김정은 초청에 트럼프 즉각 화답
문 대통령 북-미 중재외교의 쾌거
회담 개최까지 긴장 놓지 말아야
문 대통령 북-미 중재외교의 쾌거
회담 개최까지 긴장 놓지 말아야
한반도 정세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을 방문한 특사단이 8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면담하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트럼프 대통령 초청 메시지를 전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초청을 수락함과 동시에, 오는 5월 안에 만나겠다는 뜻을 즉각 표명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몇 단계 예비 과정을 거치리라는 예상을 깨고 전격적이고 파격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 합의다. 지난번 대북 특사단의 남북정상회담 합의에 이어 다시 한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정상회담이 실제로 성사되면, 한반도 정세를 근본적으로 뒤바꿀 역사적인 만남이 될 것이다. 적대로 일관해온 북-미 관계는 이로써 한반도 평화에 일대 전기를 마련하고 극적인 정상화로 나아갈 돌파구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우리 특사단이 전달한 메시지를 통해 비핵화 의지를 천명하고 향후 어떠한 핵 또는 미사일 실험도 자제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추가 핵실험이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하지 않겠다’고 지난번 대북 특사단에 밝힌 것보다 한층 더 명확한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김 위원장의 초청에 트럼프 대통령은 ‘4월에 하자’는 제안까지 내놓으면서 북-미 대화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두어달 전까지만 해도 ‘핵단추 설전’을 벌이며 대결 구도로 일관했던 북-미 관계에 대반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극적인 전환은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을 받아온 북한과,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내부 악재를 돌파해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가 서로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북-미 사이에 ‘비핵화’와 ‘체제 보장’을 주고받는 ‘빅딜’ 과정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상황을 주도하면서 결단을 내리는 두 정상의 공통된 스타일로 보건대 관계 정상화가 의외로 빨라질 가능성도 있다.
북-미 관계의 대전환은 그동안 우리 정부가 들인 공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베를린 선언’ 이후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 돌파구 마련을 위해 조심스럽고도 끈질기게 노력했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전후해서는 북-미 사이 다리를 놓는 외교적 승부수를 던졌다. 지난 한달 사이에 남북 고위급 특사단 왕래를 통해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를 이룬 데 이어 북-미 정상회담 약속까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한국이 주도한 ‘북-미 중재’의 쾌거라고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의 운전대를 잡고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간 결과이기도 하다. 북-미 정상회담 합의로 4월 말 열릴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관계 발전의 획기적인 전기가 될 가능성을 예고함과 동시에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회담의 성격까지 띠게 됐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이 실제로 열리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남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초청 수락을 알리면서 동시에 ‘비핵화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제재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아직 충분히 안심할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 만큼 북-미 사이에 변수가 끼어들지 않도록 우리 정부는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 우선 한반도 주변국들의 지지와 협조를 이끌어내는 것이 시급하다. 중국은 북-미 합의를 ‘대사건’이라고 환영하고 있지만, 일본은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북-미 관계의 진전 국면에서 일본이 배제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사단이 돌아오는 대로 중·일·러 세 나라를 방문하기로 했으니, 결과를 소상히 설명하고 지지를 구해야 한다.
미국의 대북 협상 라인이 공석이라는 사실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조셉 윤 국무부 특별대표가 빠진 뒤로 대북 실무 접촉을 이끌고 북-미 간 의견을 전달할 대북 전문가가 없는 상태나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북-미 교섭에 뜻하지 않은 마찰이 발생할 경우 일이 잘못될 수도 있다. 2000년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북-미 정상회담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막판에 무산된 것을 잘 살필 필요가 있다. 정부는 이 천재일우의 기회가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관계 정상화라는 최종 목표로 이어질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북-미 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의 흔들리지 않는 초석을 세우는 데 일대 전환점이 되기를 국민과 더불어 바라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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