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각)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경질하고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새 국무장관으로 내정했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복심’을 앞세워 협상 진용을 재정비하고 북-미 협상을 주도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과 틸러슨 장관은 지난해 7월 이후 사사건건 이견을 노출해 장관 교체설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북한 문제 해법을 둘러싸고 갈등이 계속됐다. 트럼프가 ‘최대 압박’을 강조하는 중에도 틸러슨은 ‘조건 없는 대화’를 주장해 강-온 대립을 빚었다. 이란 핵협정, 파리기후협약 등의 문제에서도 틸러슨은 기존 틀을 존중하는 온건한 해법을 제시한 데 반해 트럼프는 일방주의적 강경론을 고수했다. 이 때문에 틸러슨이라는 브레이크가 사라진 뒤 미국의 대외 관계가 더욱 완고한 일방주의로 치달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점들을 우리 정부는 잘 살펴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최대 관심사인 북-미 관계 문제만 놓고 보면, 국무장관 교체로 당장 기류가 바뀔 가능성은 크지 않다. 폼페이오가 강경파이긴 하지만 틸러슨이 눈 밖에 난 뒤 트럼프의 심복으로 정상회담 합의 배후에서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우리는 처음부터 궁합이 잘 맞았고 사고방식도 매우 비슷하다”고 폼페이오 발탁 이유를 밝혔다. 폼페이오는 트럼프와 호흡이 잘 맞을 뿐만 아니라 틸러슨에 비해 한반도 상황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중한 틸러슨과 달리 트럼프의 ‘대북 빅딜론’도 지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회담에 앞서 협상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려면 폼페이오 같은 충성파가 전면에 나서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국무장관 교체는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에 따라 새 판을 짜는 차원에서 단행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것들을 고려해보면 강경파 폼페이오 등장이 북-미 회담 성공을 바라는 우리에겐 나쁠 게 없다. 하지만 5월 정상회담이 틀어질 경우 트럼프-폼페이오 짝이 더 강경한 대북 정책으로 기울어져 정세를 급격히 악화시킬 수도 있다. 우리 정부는 모든 상황을 주시하면서 한-미 공조에 혼선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미 간 소통과 신뢰가 바탕이 돼야만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하는 한반도 평화 구상도 힘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