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지엠(GM) 본사가 한국지엠을 정상화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한겨레> 보도를 보면, 한국지엠이 앞으로 5년간 직원을 1만7천명에서 1만1천명으로 줄이고 연간 생산량은 50만대에서 30만대로 축소하는 내용을 담은 ‘외국인투자지역 지정 신청서’를 인천시와 경상남도에 13일 제출했다. 9억4800만달러(약 1조원) 규모의 시설투자 계획도 내놨지만 상당 부분이 신규 투자라기보다는 기존 시설 교체에 가깝다. 반면 외국인투자지역으로 지정되면 5년간 각종 세금을 면제받는다. 이와 별개로 지엠은 산업은행에 유상증자 참여를 통한 5천억원의 자금 지원도 요청했다. 고용과 생산은 줄이겠다면서 세금 면제와 자금 지원을 해달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몰염치한 태도다.
지엠을 상대하는 정부와 산업은행의 대응은 미덥지 못하다. 이런 신청서라면 바로 반려하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도 열흘이 지나도록 신청서를 주무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아직 지방자치단체가 심사를 마치지 않았고 내용이 계속 바뀔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식의 물러터진 대응은 지엠에 잘못된 신호만 전달할 뿐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20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한국지엠에 5천억원 들여서 일자리 10만개를 5년이라도 유지한다면 그게 나쁜 장사인가”라고 말했다. 지엠 사태의 해법을 일자리 유지라는 ‘사회적 가성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얘기다. 일면 그럴듯해 보이나 사리에 맞지 않는다. 만약 5년 뒤에 지엠이 다시 철수를 무기로 추가 지원을 요구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도 각종 혜택을 제공하면서 5년만 더 있어 달라고 바짓가랑이를 잡을 텐가.
지엠은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일자리와 지역경제를 볼모로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며칠 전엔 지엠 본사의 메리 배라 회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면담하고 싶다는 얘기를 흘렸다. 대통령을 만나 지원을 빨리 끌어내겠다는 것이다. 지엠의 의도에 말려들어선 안 된다. 경영난을 겪고 있는 협력업체들에 긴급자금 지원 등 응급조처는 필요하지만 지엠에 대한 지원은 성급히 결정해서는 안 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
한국지엠 부실의 일차적 책임은 지엠 본사에 있다. 한국지엠에 필요한 수출 물량을 배정하고 곶감 빼먹듯 이익을 가져가지 않았다면 한국지엠이 이렇게까지 어려워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사태 해결의 일차적 책임도 지엠 본사가 져야 한다. 한국지엠의 지속가능한 경영을 담보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게 해야 한다. 우리 정부의 지원은 그다음 문제다.
지엠이 한국에서 계속 사업을 하는 게 최선의 방안이다. 하지만 끝내 철수를 하겠다면, 말릴 도리가 없다. 다만 지엠이 철수를 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공장 문을 닫고 떠나지는 못한다. 지엠도 손실이 크기 때문이다. 연간 생산량이 10만대 규모인 호주에서도 철수하는 데 4년이 걸렸다. 실업의 충격을 완화하면서 사업을 이어갈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할 시간이 있다는 얘기다. 당장 발등의 불이 뜨겁다고 졸속으로 결정한다면 머지않아 더 큰 화를 부를 것이다.
▶ 관련 기사 : GM, 한국에 손 벌리며 “앞으로 5년간 6천명 감축하겠다”
▶ 관련 기사 : GM, 대량 감원 하면서 감세 특혜도 요구…정부, 깊어진 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