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을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주석궁에서 쩐 다이 꽝 베트남 국가주석과 6건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뒤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베트남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참전과 민간인 학살에 대해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문 대통령은 23일 쩐다이꽝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 앞선 머리발언에서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 양국 간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두 나라 관계가 더 성숙해지려면 정치·경제적 교류 증진 못지않게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고 씻어내는 조처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이 마땅히 해야 할 발언을 했다고 평가한다.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과 관련해서는 과거에도 몇 차례 간접적인 사과 발언이 있었다. 1998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한-베트남 정상회담에서 “우리 두 나라 사이에 한때 불행한 시기가 있었다”고 처음으로 과거사를 언급했다. 2001년에는 방한한 쩐득르엉 베트남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도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인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도 “우리 국민들은 베트남에 마음의 빚이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앞선 발언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베트남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한국에 사과를 요구하고 있지 않지만, 피해를 준 우리로서는 기회 있을 때마다 과거 잘못에 대해 머리 숙이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과 베트남은 1992년 수교 이래 특히 경제 관계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베트남은 한국의 4대 교역국이고 한국은 베트남의 2대 교역국이자 최대 투자국이다. 한국이 추진하는 신남방정책의 가장 중요한 협력 파트너이기도 하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두 나라는 2020년까지 교역액을 1000억달러까지 끌어올리자는 내용을 담은 ‘한-베트남 미래지향 공동선언’도 채택했다. 이런 경제·외교의 협력은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여기에 더해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려는 노력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이 도덕적 인권국가로 나아가려면 베트남인들에게 준 커다란 고통을 정직하게 응시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자면 정부 차원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에서도 이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베트남전 학살에 대한 참회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문 대통령의 유감 표명이 우리의 깊은 반성을 통해 두 나라 관계의 진정한 성숙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