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를 선두로 몇몇 주요 사립대학들이 현재 고2가 치르는 2020학년도 대입에서 정시 비중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지난 2007년 수시가 정시 비중을 앞지르기 시작한 이래, 올해 대입에선 수시가 76.2%에 달하는 등 너무 급격하게 정시가 줄어드는 데 대한 비판여론이 거셌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은 ‘깜깜이 전형’ ‘금수저 전형’으로 불리며 공정성·투명성 논란을 일으켰다. 매해 수시·정시 비중 등을 구체적으로 확정하는 대학 당국이 이런 지적들을 받아들여 어느 정도 조정을 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이번 발표가 대학이 자율적으로 시간을 두고 선택한 결과가 아니라는 점과 급격한 방향 전환으로 받아들여져 현장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각 대학들은 3월30일 2020학년도 세부입시안을 대학교육협의회에 제출하고, 4월말 확정하는 일정에 따라 대부분 2~3월에 내부적으로 방침을 확정 지었다. 그런데 3월28~30일 박춘란 교육부 차관이 몇몇 대학에 전화를 걸거나 직접 만나면서 일부 대학들의 방침이 달라졌다. 교육부는 “그대로 두면 수시·정시가 8:2까지 벌어지는 등 쏠림이 심할 것으로 파악돼 우려를 전달한 것”이라고 해명하지만, 차관의 말을 대학들이 ‘압력’으로 느꼈을 것은 뻔한 일이다. 방식뿐 아니라 시기도 부적절하다. 이미 몇년 새 정시 비중 급감은 명백한 흐름이었다. 그런데 그동안 아무런 정책적 신호를 주지 않다가 제출 시한을 코앞에 두고 이런 일을 벌이는 건 교육부가 무능하거나 권위주의 시대 인식에 머물러 있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지난 10년간 교육부의 기조는 수시 확대였다. 문재인 정권 출범 뒤 잇달아 발표한 수능 절대평가 확대 시도, 고교학점제 도입, 내신 성취평가제 적용 등도 현장에선 수시에 힘을 싣는 것으로 해석돼왔던 터라, 이번 정시 확대가 모순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현재 고2라면 상당수가 수시·정시 중 선택을 이미 끝낸 상황이다. 아무리 의도가 좋다 해도, 이건 학생들 중심의 관점이 아니다. 입시제도의 큰 방향 전환은 오는 8월 발표하는 2022학년도 대입안을 확정 짓는 과정에 담는 게 순리다. 단기 처방에 급급해 강압적 방식까지 쓴다면, 정책의 불신을 초래해 근본적인 교육 개혁의 공감대마저 훼손시킬 수 있다. 교육부만 이걸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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