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현대자동차그룹 핵심 계열사 3곳의 지분 1조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다며, 더 구체적인 지배구조 개선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소수 주주로서 권리를 적극 행사해 주가를 끌어올려 차익을 얻겠다는 뜻일 게다. 현대차그룹으로선 최근 밝힌 순환출자 해소 계획 실행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주주가 합법적 권리를 행사한다면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엘리엇의 요구를 반영해 현대차의 기업가치가 상승한다면 상생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외국계 펀드가 국내 주식을 매집하고 주주 행동에 나서는 일에 부정적인 평가가 많은 것은, 돈벌이를 위해 해당 기업과 주식시장만 교란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2004년 영국의 헤르메스 자산운용은 삼성물산 지분 약 5%를 사들인 뒤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할 것처럼 언론에 흘리고는 주가가 오르자 팔아치우고 떠났다. 2005년 미국 헤지펀드 칼 아이칸은 케이티앤지(KT&G) 지분을 사들여 경영권을 위협함으로써 1년 만에 1천억원이 넘는 차익을 챙겼다.
그러나 펀드가 돈을 벌고, 기업에 득이 되는 때도 있다. 영국계 투기자본인 소버린 자산운용은 2003년 에스케이 주식을 매입해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2년 만에 수천억원을 벌어 떠났는데, 그 과정을 거쳐 에스케이 주가는 큰 폭으로 올랐다. 지배구조 개선 덕이었다. 행동주의 펀드를 자극하는 것은 기업의 약점이란 사실도 간과해선 안 된다. 엘리엇은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비율에 반발해 소송전을 벌이고 지분 대결을 벌였으나 실패한 바 있다. 삼성이 최대주주 일가에 유리하게 무리한 합병을 추진해서 생긴 공격이었다.
엘리엇은 이번에 현대차그룹에 계열사별 기업 경영구조 개선, 자본관리 최적화, 주주 환원을 어떻게 할 것인지 세부 로드맵을 공유해줄 것을 요청했다. 1조원은 지분으로 1.4%가량이다. 정몽구 회장 일가의 경영권에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현대차가 엘리엇의 요구를 취약점을 개선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주가가 한 단계 상승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상장사들이 법을 잘 지키고 소수·소액주주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행동주의 펀드가 도전해 와도 그다지 겁날 게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