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한국지엠(GM) 부평공장에서 노사 합의 내용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왼쪽부터), 배리 엥글 지엠 본사 해외사업부문 사장,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협력업체인 다성의 문승 사장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인천/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한국지엠(GM) 노사가 마침내 ‘자구 계획’에 합의했다. 미국 지엠 본사가 법정관리 신청 2차 시한으로 제시한 23일, 노조가 추가 고통분담 방안을 수용했다. 노조는 임금·단체협약 협상에서 연차휴가 수당 축소와 복리후생비 삭감 등을 받아들였다. 앞서 노조는 올해 임금 동결과 지난해 성과급 반납 등을 수용한 바 있다. 노사는 또 군산공장에 남아 있는 노동자 680명에 대해 추가 희망퇴직과 전환배치를 하되 무급휴직은 시행하지 않기로 했다. 군산공장에선 이미 지난 3월 2500명이 희망퇴직을 했다.
만약 노사가 이날도 합의에 이르지 못해 법정관리로 갔다면 한국지엠 노동자 1만4천명과 협력업체 노동자 14만명 등 15만명 이상이 고강도 인력 구조조정에 직면할 수 있었다. 또 군산에 이어 부평과 창원의 지역 경제도 큰 타격을 피할 수 없었다.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극적인 노사 합의로 파국을 피했지만 한국지엠이 정상화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이제 겨우 한 고비를 넘겼을 뿐이다. 자금 지원과 신차 배정 등을 놓고 지엠 본사와 산업은행, 한국 정부 간의 본격적인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노조가 비용 절감의 희생을 떠안은 만큼 이젠 지엠 본사가 대주주로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한국지엠 부실의 가장 큰 책임은 누가 뭐래도 지엠 본사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 본사는 한국에서 사업을 오래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이런 점에서 출자전환과 차등감자는 진정성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다. 애초 지엠 본사는 한국지엠에 빌려준 27억달러(3조원)의 대출금을 출자전환하기로 했다. 그러나 산은이 20 대 1 이상의 차등감자를 요구하자 출자전환 철회 가능성을 밝혔다. 차등감자 없이 출자전환을 하면 산은의 지분율(17%)이 대폭 줄어든다. 한국지엠의 철수를 막아낼 거부권을 잃게 된다. 차등감자는 부실기업 회생 작업 때 대주주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이를 거부하는 것은 지원만 받고 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는 의도로 읽힌다.
지엠 본사는 부평과 창원공장에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 2종을 새로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정도로 한국지엠이 경쟁력을 회복하고 고용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 지엠 본사가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의 개발·생산에 한국지엠의 참여를 보장하는 구체적인 계획을 내놔야 한다. 정부의 지원 여부도 이를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정부는 한국지엠 지원의 3대 원칙으로 대주주의 책임 있는 역할, 모든 이해관계자의 고통 분담, 지속 가능한 경영 정상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앞으로 지엠 본사와의 협상에서 반드시 관철시켜야 한다. 당장 급하다고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면 언제라도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될 수 있다.
▶ 관련 기사 : 한국GM, 회생 ‘첫 단추’ 끼웠다
▶ 관련 기사 : 노사 고통분담으로 숨통 튼 GM…또 다른 변수 ‘차등감자’
▶ 관련 기사 : GM 신차 투입…부평은 ‘재탕’ 창원은 ‘상상 속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