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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겨레 사설] 판문점의 봄, 평화·번영의 시대 열다

등록 2018-04-27 21:20수정 2018-04-28 12:29

남북 정상 손잡고 군사분계선 넘어
평화·공존·통일의 판문점 선언 발표
70년 분단 넘어 ‘번영의 한반도’ 기대

김정은 위원장 ‘이행 의지’ 강조 주목
완전한 비핵화로 핵 없는 한반도 실현
북-미 정상회담으로 유종의 미 거두길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 지역에 갔다 다시 남측지역으로 향하고 있다. 김경호 기자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 지역에 갔다 다시 남측지역으로 향하고 있다. 김경호 기자

한반도 평화의 새 역사가 쓰였다. 27일, 마침내 분단 70년의 질곡을 딛고 남북의 두 정상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만났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환한 얼굴로 마주 보며 첫 악수를 나누었다. 두 정상은 분단의 선을 손잡고 함께 넘고 다시 넘었다. 온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예정에 없던 퍼포먼스를 통해 분단을 넘어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자는 남북의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대결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을 화해의 상징으로 바꾸는 뜻깊은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감격 어린 만남 속에서 두 정상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통해 한반도에 더는 전쟁이 없는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천명했다. 한반도 평화를 염원해온 8000만 겨레와 함께 축하할 민족사적 사건이라 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11년 만에 다시 열린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의미를 넘어 한반도 평화정착에 극적인 전환점이 될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김 위원장은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어옴으로써 정전협정 이래 처음으로 남쪽 땅을 밟은 북쪽 최고지도자가 됐다. 김 위원장은 북쪽 최고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의장대 사열을 받았다. 김 위원장을 정상국가 최고지도자로 인정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한층 더 높은 수준으로 나아갈 것임을 예고하는 일로 받아들여도 될 것이다. 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가 만찬에서 문 대통령, 김정숙 여사와 함께한 것도 정상국가화의 의지를 확실히 보여준 것이라고 할 것이다.

김 위원장은 솔직하고 파격적인 모습으로 등장했다. 문 대통령과 만나는 순간 군사분계선을 함께 넘나든 것부터가 파격이었다. 김 위원장이 북쪽의 도로 사정이 좋지 못하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북쪽 내부의 문제나 잘못을 드러내지 않는 ‘관행’을 깨뜨린 것이다. 허장성세 없이 부족한 것은 부족한 대로 이야기할 줄 아는 모습은 그만큼 신뢰를 심어주는 데 도움이 된다. 거짓 없는 만남만큼 상대를 안심시키는 것도 없다. 더 나아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직접 기자들 앞에 나와 판문점 선언의 의의와 내용을 설명했다. 김 위원장이 기자들 앞에 선 것은 처음이었다. 과거 김정일 시대에는 볼 수 없었던 개방적인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가장 큰 성과는 전쟁질서를 평화질서로 바꾸자는 남북의 의지를 담은 ‘판문점 선언’이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한반도 비핵화 의제에서 두 정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남북정상회담 선언문에 비핵화가 명시됐다는 점에서 이 선언은 그간 기대했던 바를 충족시킨다고 할 것이다. 비핵화 문제는 나머지 다른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핵심 고리에 해당한다. 그동안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이번 선언을 통해 이런 의구심은 확실히 불식하게 됐다. 비핵화는 최종적으로 미국과 북한 사이에 담판을 지어야 할 문제다. 그러나 남북이 상당히 높은 수준의 비핵화 선언을 함으로써 나머지 문제를 풀어가기가 그만큼 쉬워졌다.

이번 선언은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가을 평양을 방문하기로 했다는 사실도 포함됐다. 문 대통령 가을 방북이 이루어지면 한해에 두 차례나 정상회담이 열리게 된다. 그동안 남쪽에서 추진해온 정상회담 정례화가 사실로 굳어지는 것이다.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발전과 긴장완화 및 남북협력에 큰 도움이 될 것은 물론이다. 회담 중에도 남북 정상은 ‘수시로’ 만나자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했는데, 이로 미루어보건대 1년에 두 차례 정도는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 대통령이 전통 의장대와 행렬하던 중 김 위원장에게 “청와대에 오시면 훨씬 좋은 장면을 보여드릴 수 있다”고 하자 “초청해주시면 언제라도 가겠다”고 한 것은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 뒤 서울에서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을 예고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해 이번 정상회담에서 어느 정도 합의가 나올 것인지는 비핵화 다음으로 관심이 큰 의제였다. 특히 종전선언 문제에서 어느 정도 진전을 보이느냐가 관심사였다. 두 정상은 판문점 선언에서, 한반도에서 비정상적인 현재의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확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은 더 미룰 수 없는 역사적 과제라고 천명했다. 물론 종전선언은 남북 두 당사자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관련 당사국이 함께 참여해 이룰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언문에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하기로 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것이다. 이 선언으로 미루어보건대 앞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한 뒤에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이 함께 만나 종전선언을 할 것으로 보인다. 남과 북은 평화체제 정착이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최대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두 정상이 서로 어떤 무력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불가침 합의를 재확인하고 엄격히 준수하기로 한 것도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남과 북이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기 위해 합의한 내용들도 관심을 끈다. 상대방에 대한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한 것은 남북관계가 좋았던 시절로 상태를 되돌리겠다는 선언이다. 특히 비무장지대를 앞으로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나가기로 한 것은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를 위한 조처로 평가할 만하다. 또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실제적인 대책을 세워나가기로 한 것도 기대를 모은다. 앞으로 열릴 군사당국회담에서 이 합의를 구체화할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김 위원장이 시종 ‘이행 의지’를 강조한 것도 특별히 눈여겨볼 대목이다. 정상 간 합의를 스스로 먼저 이행할 뜻을 밝힌 것이기도 하지만, 상대방에게 약속대로 합의를 이행해야 함을 요구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과거 남북 사이에, 또 북-미 사이에 여러 차례 중대한 합의가 있었지만 중간에 휴짓조각이 되거나 무용지물이 된 것은 북쪽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보수 정권 아래서 남북 합의들이 이행되지 않은 것도 여러 건이고 북-미 사이에도 미국 쪽의 합의 불이행으로 관계가 틀어진 경우가 적지 않다. 남과 북이 이 점을 유념해 이번에 만들어낸 합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낸다는 각오로 착실히 실행해 서로 믿음을 쌓아올려야 한다.

한달여 뒤에 열릴 북-미 정상회담을 중재해야 하는 문 대통령으로선,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확실히 밝힘에 따라 북-미 양국을 중재하기에 훨씬 좋은 위치에 올라섰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이 회담 성과를 가지고 다음달 중순 열릴 예정인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조율해야 한다. 미국은 두 정상이 첫 대면을 한 직후에 성명을 내 남북 정상의 만남이 “한반도 전체를 위한 평화와 번영으로 가는 진전을 이루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남북정상회담이 이끌어낸 판문점 선언이 북-미 ‘빅딜’을 이루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본다.

남북 정상이 다짐한 대로 이제 우리에겐 평화와 번영의 길을 달리는 일이 남았다. 한반도 비핵화가 평화 정착으로 이어져 남북이 협력하고 상생하는 새 시대를 만들어가길 기원하며, 정상회담의 큰 성취를 온 겨레와 함께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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