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의 ‘판문점 선언’ 이후 북한과 미국이 비핵화 문제의 일괄 타결을 향해 속도를 내고 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이대로 가면 북-미 양쪽이 모두 만족할 확실한 결론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상황을 낙관하기에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언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를 암초를 조심해야 하는 국면이다.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29일(현지시각) 언론에 나와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해 리비아 모델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 것이 그런 경우다. 볼턴이 리비아와 북한은 차이가 있다는 말을 덧붙이기는 했다. 그렇다 해도 북-미 대화가 무르익는 상황에서, 북한이 거부하는 리비아 모델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나선 것은 대화에 나쁜 신호를 줄 수 있다. 볼턴의 발언이 협상 전술상 강경책을 구사해야만 더 많이 얻어낼 수 있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면 사태를 잘못 이해한 것이라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협상 파트너에게 굴욕을 강요하면 판이 깨질 수 있다.
미국의 일부 언론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협상에 대해 우려를 쏟아내는 것도 과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유력 일간지 <뉴욕 타임스>는 ‘북한이 먼저 모든 핵무기를 포기해야 하며 그 후에 협정을 위한 대화나 제재 해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완전한 핵폐기 없이는 협상을 해선 안 된다는 것은 사실상 협상을 하지 말자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주장이다. 이 신문은 남북 정상이 판문점 선언에서 비핵화 일정을 설정하지 않아 문제라고도 했는데, 비핵화 일정을 정하는 것은 북-미 회담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간과한 편협한 지적이다.
오히려 현재 국면에서 더 합리적이고 전향적인 발언을 하는 쪽은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판문점 선언이 완전한 비핵화를 확인한 데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에서 매우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또 북-미 정상회담이 3~4주 안에 열릴 것이라고 날짜를 앞당기기도 했다. 북-미 대화의 실질적 주역이라 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북한이 비핵화를 달성하도록 도와줄 준비가 됐으며, 완전한 비핵화 방법론에 대해 북-미 양쪽이 의견 접근을 이뤘음을 시사했다. 북한의 신속한 움직임과 트럼프 대통령의 맞대응을 보건대, 비핵화 과정이 의외로 빨라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미가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도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 핵심은 비핵화와 체제보장을 주고받는 로드맵을 만드는 것이다. 북-미가 일괄 타결을 이루되, 구체적인 비핵화 이행 과정에서 단계를 최대한 압축해 통 크게 주고받기를 하는 것이 관건이다. 우리 정부는 이 과정에서 양쪽의 불일치를 조정하면서 필요할 경우 제3의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