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 수업에서 남성 모델의 누드 사진을 몰래 촬영해 유출한 여성 모델 사건을 두고 ‘편파’ 내지 ‘성차별’ 수사 논란이 번지고 있다. 주말엔 여성들이 붉은 옷을 입고 참여하는 규탄시위도 예고됐다. 신속한 범인 검거를 ‘잘못된 수사’로 볼 일은 아니지만,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인식과 처벌 수위가 터무니없이 낮았던 현실이 빚어낸 논란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한 포털의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카페는 개설 닷새 만에 회원이 2만명을 넘어섰다. 이들은 불법촬영물 피해자의 98.4%가 여성인데, 수사기관이 남성 피해자 사건은 신속하게 처리하고 여성 피해자 사건은 대부분 지켜보기만 한다고 지적한다. 청와대 게시판에 오른 ‘여성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합니다’라는 청원도 30만 서명을 돌파했다. 피해자가 남성인 점, 사진이 ‘남성혐오’ 사이트 워마드에 오른 점 등 때문에 이번 사건이 큰 주목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동시에 이 사건은 수사 대상이 한정되고 유포 경로도 특정된다는 점에서 신속한 범인 검거가 용이한 조건을 갖췄다. 오히려 미적댔다면 경찰이 욕먹었을 사안이다. 유사 사건 전례에 비춰 구속이 과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지만, 피의자가 휴대폰을 버리는 등 증거인멸 시도가 있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건 ‘피해자가 여성이어도 이랬을까’라는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국내 최대 음란사이트 소라넷이 끈질긴 여성단체들의 문제제기 끝에 폐쇄됐지만, 유사한 리벤지포르노류 사이트의 확산 속도를 수사기관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해외 사이트라 잡기 어렵다’는 말을 경찰로부터 들으며, 끔찍한 영상을 스스로 삭제해야 하는 피해자도 많다. 한국여성변호사회의 판결문 분석을 보면, 영상물 촬영 유포죄의 경우 벌금형이 70%를 넘는다. 이런 낮은 처벌수위 속에 몰카 등 디지털성범죄는 지난 10년간 가장 급증한 성폭력범죄 유형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몰카 범죄, 데이트 폭력 등은 여성의 삶을 파괴하는 악성범죄”라며 “수사기관들이 조금 더 중대한 위법으로 다루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디지털성범죄는 성별에 관계없이 ‘인격살인’이자 용서할 수 없는 ‘성폭력범죄’다. 이번 사건을 이런 인식을 확산하고 처벌 수위를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