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 왼쪽부터 첫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셋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부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 조 회장, 둘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그래픽 / 장은영
국토교통부가 2014년 12월 벌어진 ‘땅콩 회항’의 책임을 물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게 과태료 150만원, 대한항공에 과징금 27억9천만원을 18일 부과했다. 3년6개월 전의 불법행위에 대해 이제야 처벌을 내리다니 뒷북도 이런 뒷북이 있을 수 없다. 국토부는 “당시 법률 자문 결과, 혼선을 줄이기 위해 법원 판결 확정 뒤 논의하기로 결정했고 지난해 12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와 이번에 행정처분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도 이미 6개월 전에 나왔다는 점에서 얼렁뚱땅 넘어가려다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갑질과 비리 의혹이 터져나오자 뒤늦게 처벌을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국토부는 행정처분이 늦어지게 된 과정에 부적절한 업무 처리가 있었는지 내부 감사를 하기로 했다.
이뿐만 아니다. 국토부는 조 회장의 차녀 조현민씨가 2010~2016년 불법으로 진에어 등기임원을 지낸 것을 방치했다. 조씨는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 국적을 포기했다. 공식석상에서 미국식 이름 ‘조 에밀리 리’를 쓴다. 항공법상 외국인은 국적 항공사의 등기임원을 맡을 수 없다. 국가 기간산업인 항공업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다. 이를 어기면 항공면허 취소 사유에 해당된다. 국토부는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해명한다. 그러나 땅콩 회항 사태 때 “언니, 내가 꼭 복수해줄게”라는 문자를 보내는 등 그동안 조씨가 물의를 일으킬 때마다 그의 미국 국적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는 점에서 믿기 어렵다. 봐주기라는 의심이 든다. 조씨가 2016년 등기임원직을 그만둬 이젠 처벌하기도 어려워졌다. 소급 적용이 되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불법 등기임원 묵인 논란에 대해서도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국토부와 대한항공의 유착관계는 뿌리가 깊다. 오죽하면 ‘칼피아’(대한항공 영문약자인 칼과 마피아의 합성어)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조 회장은 부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과 1973년 결혼했는데 이 이사장의 부친이 고 이재철 교통부 차관이다. 그는 1976년 차관에서 물러난 뒤 한진그룹 산하 인하대 총장에 취임했다. 국토부 공무원들이 퇴직을 한 뒤 대한항공 고위직으로 영입된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또 대한항공 출신들은 국토부 항공 관련 부서에 대거 포진해 있다. 땅콩 회항 때 조사 내용을 대한항공에 수시로 알려준 사실이 드러나 구속된 국토부 조사관도 대한항공 출신이다. 국토부는 대한항공의 불법행위를 눈감아주고 대한항공은 국토부 공무원들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해주는 공생관계를 이어온 것이다.
조 회장 일가의 밀수 혐의를 조사하는 관세청도 마찬가지다. 이제 와서 압수수색이다 뭐다 부산을 떨고 있지만 관세청의 묵인 없이 오랜 세월 그 많은 물품들의 밀반입이 가능했겠느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실제로 대한항공이 좌석 승급과 고가 선물 등을 통해 관세청 공무원들을 관리해왔다는 대한항공 직원들의 폭로가 나오고 있다.
국토부와 관세청이 그동안 업무를 엄정하게 처리했다면 대한항공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르지 않았을지 모른다. 조 회장 일가를 철저히 조사해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이번 기회에 국토부와 관세청의 유착세력도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 부패의 고리를 그대로 두면 똑같은 상황이 언제라도 또다시 벌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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