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21일 방미 길에 오른다. 22일(현지시각) 열리는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20여일 앞두고 불거진 북-미 갈등을 중재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안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는 배석자 없는 두 정상만의 단독회담도 포함돼 있는데, 돌출한 악재를 제거하기 위해 두 정상이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출국에 앞서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고 사전에 의견 교환을 한 것도 이번 정상회담에 놓인 과제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북-미 사이 긴장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리비아 모델’ 발언을 두고 생겨난 만큼,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북한이 안심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한반도 비핵화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어야 한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볼턴 비난 담화가 나온 뒤 트럼프 대통령이 리비아 모델과 확실히 선을 그으면서 북한 체제를 보장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여전히 안갯속에 있다. 이래서는 북한이 느끼는 불안감을 씻어내기 어렵다. 한-미 정상회담은 북한의 태도를 바꿀 체제보장 방안을 좀더 명확하게 제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비핵화 후 북한 체제안정이 미국의 대북 투자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미국에도 이익이 된다는 점을 들어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을 만난 뒤 태도가 바뀌었다’며 북-중 관계에 의구심을 드러낸 것도 문 대통령에게 숙제를 남겼다. 북·중과 한·미가 맞서는 듯한 구도로 바뀌는 것은 미·중 양국의 도움을 얻어 한반도 정세를 근본적으로 바꾸려 하는 우리에게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문 대통령은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와 개혁개방에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음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납득시킬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것도, 따지고 보면 북-미 갈등의 여파라고 할 수 있다. 남북고위급회담 연기의 빌미가 된 한-미 연합공중훈련은 말할 것도 없고, 북한이 탈북자 송환 문제를 들고나온 것도 북-미 갈등과 관련해 한국이 미국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는 뜻으로 볼 여지가 있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의 남쪽 취재진 명단 수령을 거부한 것도 그런 압박의 일환일 것이다. 동시에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 준비 절차를 진행중이라는 점도 분명하게 감지된다. 23~25일로 예정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절차를 계속 밟고 있다는 정황이 뚜렷하고, 북한 외무성 대표단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싱가포르로 파견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런 점들을 살펴보건대, 북한은 북-미 정상회담을 착실히 준비하면서 한편으로 비핵화에 따르는 체제보장을 얻어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체제보장의 방법과 관련한 북-미 간 이견을 해소하는 것이 결정적인 문제라고 할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북한이 느끼는 불안의 강도를 미국에 전달하고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이 불안을 해소할 방안을 좀더 분명히 도출해야 한다. ‘북한 체제 보장’이라는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된다면, 일시적으로 경색된 남북관계도 풀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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