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MB)이 23일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 섰다. 지난해 같은 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섰던 자리다. 하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일이란 점도 우연치고는 묘하다.
이 전 대통령은 모두진술을 통해 예상대로 혐의를 대부분 부인했다. 다스는 ‘형님 회사’라며 30년간 소유권 다툼도 없었는데 왜 국가가 개입하냐고 말했다. “(재임 중) 개별 기업과 단독으로 만난 일이 한 번도 없다”며 이건희 삼성 회장 사면의 대가로 뇌물을 받았다는 공소사실은 ‘충격이고 모욕’이라고 했다.
검찰 쪽 증거 채택에 동의한 데 대해서도 “국정을 함께했던 사람들과 다투는 걸 국민께 보여드리는 게 참담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파쇄기까지 동원해 직접 증거서류를 없앤 그의 행적에 비춰보면, 영포빌딩에서 압수된 완벽한 증거물과 가족·측근들의 솔직한 고백 앞에서 법리공방이 무의미하다는 판단을 했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이다. 이미 대부분 국민이 “다스는 엠비 것”이라는 친지·측근들의 진술 내용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구속 직후부터 검찰의 옥중 조사도 거부한 입장에서, “재판도 거부하자는 주장이 많았으나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었다”며 “사법의 공정성을 국제사회에 보여달라”고 재판부에게 ‘훈계’한 것도 황당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이번에 기소된 뇌물수수·횡령 등 혐의 이외에도 국정원과 군·경찰을 동원한 댓글공작과 정치공작 등 숱한 국정농단 혐의를 받고 있다. 블랙리스트를 이용한 문화·언론·예술계 탄압도 그의 임기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첫 재판을 보면 그에게서 20년간 국민을 속여온 데 대한 진정한 사과를 기대하기란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