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2일(현지시각) 정상회담은 한동안 이상기류에 휩싸였던 북-미 정상회담 준비를 정상궤도에 올려놓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수용하면 체제 안전을 보장하고 대폭적인 경제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전에도 체제보장과 경제지원 의사를 밝힌 적이 있지만 문 대통령과 회담하는 자리에서 한번 더 명확하게 자신의 뜻을 밝힌 것은 평가할 만하다. 북한이 23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취재할 남쪽 취재단 방북을 허용한 것은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긍정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남아 있어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북한 비핵화 방식’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괄타결’이 바람직하다면서도 기술적·물리적으로 어려울 경우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비핵화의 실제 과정에서 북한이 요구한 단계적 해법을 일부 수용하는 ‘유연한 일괄타결’ 방안으로 해석될 만한 발언이다. 앞서 백악관이 제시한 ‘트럼프 모델’의 윤곽을 좀더 뚜렷하게 그려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핵 폐기와 관련해 큰 틀의 일괄타결을 함과 동시에, 단계를 최소화해 상응하는 보상을 하는 방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식의 구상이라면, 그동안 우리 정부가 모색해온 비핵화 해법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원하는 일괄타결과 북한의 체제보장 요구를 절충해 ‘포괄적 합의를 하되 최대한 단계와 시기를 압축하는’ 방안에 가까운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발 물러나 유연성을 내보인 만큼 북-미의 교집합이 커졌고,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늦게나마 애초 약속대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취재할 남쪽 보도진의 방북을 받아들인 것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나온 트럼프 대통령 발언을 국면 타개의 노력으로 이해했다는 뜻일 것이다. 또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들인 노력을 북한이 평가했다는 의미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일시적으로 경색된 남북관계도 다시 풀릴 가능성이 커졌다. 핵실험장 폐기는 북한 입장에서는 ‘미래의 핵’을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어서 상당히 큰 양보라고 할 수 있다. 북-미 정상회담 성공을 위해 미국도 북한의 선제적 조처에 적극적으로 화답할 필요가 있다.
한-미 정상이 북한에 긍정적인 신호를 주는 발언들을 내놓았지만, 이것만으로 북한의 불안을 달래기에 충분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개최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도 ‘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회담을 연기하거나 취소할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도 잠재적 불안 요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협상의 우위를 지키기 위해 ‘모호성 전략’을 취하는 것일 수 있겠지만, 북-미 관계가 삐걱이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의도하지 않은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우리 정부는 마지막 순간까지 북-미 사이 접점을 넓히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윤곽만 나온 트럼프 모델이 더 명확한 내용을 갖추어 북한이 안심하고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북-미 협상의 길잡이로서 우리 정부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