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갱도 폭파 방식으로 폐기했다. 사진은 미국 민간 위성업체 디지털글로브의 위성이 촬영한 풍계리 핵실험장 전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각) 오는 6월12일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이런 내용을 담은 서한을 공개했다. 참으로 놀랍고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북한은 이날 낮 함경북도 풍계리의 핵실험장을 공개적으로 폐기했는데, 미국이 정상회담 취소로 응답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제라도 미국은 정상회담 취소를 재고하고,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하길 바란다.
백악관이 공개한 바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북한 인사들 발언에서 나타난) 극도의 분노와 공개적 적대감에 근거해, 애석하게도 지금 시점에서 회담을 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느낀다”고 밝혔다. 북한 외무성의 김계관 제1부상과 최선희 부상 등이 잇따라 미국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공개 비난한 걸 거론한 듯싶다.
그러나 이는 북한이 결사반대하는 ‘리비아식 핵폐기 모델’을 미국 인사들이 계속 강조하는 데 대한 대응의 성격이 짙다. 북한은 말로는 미국 고위 인사들을 비난하면서도, 외신과 남한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24일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했다.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의지를 과시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있는 행동’을 평가하지 않고 단지 ‘과격한 말’을 문제 삼아 정상회담을 취소한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는 온당하지 않다.
특히 미국의 체제 안전보장 방안이 명시적으로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한 것은 매우 의미있는 결단이다. 북한에 풍계리 핵실험장 말고 다른 적당한 핵실험장 후보지가 없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이번 폐기 절차는 ‘미래의 핵’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미국은 이제라도 북한과 대면해, 정상회담 취소를 불러온 쟁점들을 정리하는 게 옳다. 북·미는 한편으로는 자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더 적극적으로 대화할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적대 관계에 있던 북한과 미국이 약속한 정상회담을 열지 못한다면, 북한 핵을 둘러싼 한반도 정세는 매우 불투명해지고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으로 조성된 ‘평화’의 분위기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게 중요하다. 북-미 두 나라는 대화를 재개해서, 역지사지의 자세로 대타협을 이루어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