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 백악관을 예방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을 90분간 접견한 뒤 배웅하기 위해 함께 건물 밖으로 나오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지난 1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면담이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오는 12일 예정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확실해졌다. 그동안 북-미 정상회담이 정말 열릴지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았던 점에 비춰보면, 회담을 기정사실화했다는 것만으로도 김영철 부위원장 방미는 충분한 성과를 거뒀다고 말할 수 있다.
신뢰가 협상을 가능케 하지만 때론 대화를 통해 신뢰를 쌓아가는 경우를 종종 본다. 오랜 적대관계에 있던 북한과 미국이 다양한 실무 접촉과 김영철의 미국 방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친서 전달 등을 통해서 조금은 더 ‘비핵화 협상’ 성공을 위한 신뢰를 쌓은 것 같아 다행스럽다. 이런 분위기가 싱가포르 정상회담뿐 아니라 그 이후 과정에서도 이어지길 기대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영철 부위원장과 만난 뒤 발언한 내용을 보면, 정상회담 개최 확인 외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 적지 않다. 트럼프는 “나는 (김정은과의 회담이) 한 번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며 “그 과정(프로세스)은 싱가포르에서 12일에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의 ‘일괄타결 일괄이행’ 방식에서 벗어나, 핵·미사일 폐기엔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단계적 비핵화’를 주장하는 북한과의 이견이 해소됐다고 보긴 어렵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좀더 현실적으로 북핵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로 읽힌다.
특히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한국전쟁) 종전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건 주목할 만하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서 한국 정부가 추진해온 ‘남·북·미 종전선언’이 가시화할 가능성을 높였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평화협정 체결 이전에 한국전쟁 ‘종전선언’을 먼저 하는 것에 부정적인 기류가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거론했으니 상황은 달라진 셈이다.
‘종전선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냉전이 끝나지 않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종식됐고, 평화와 화해·공존을 향한 거대한 물결이 시작됐음을 온 누리에 알린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또한 ‘비핵화와 체제 안전보장 교환’의 시간상 불일치로 인해 북한이 가질 수 있는 불안감을 해소한다는 차원에서도 긴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존 태도에서 한걸음 물러나 현실적 접근을 시작하긴 했지만, 그래도 국교 정상화나 평화협정 체결 등 미국이 줄 수 있는 ‘체제 안전보장’은 북한이 핵을 온전히 폐기한 뒤에나 가능하다. 북한으로선 ‘비핵화 프로세스’ 과정에서 과도기적으로라도 좀더 분명한 보장을 원할 것이다.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의 성격을 띠지만, 남·북·미 정상이 전세계를 향해서 함께 ‘한반도 평화’를 선언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선언’ 논의를 언급한 이상, 12일 북-미 정상회담 직후 싱가포르에서 남·북·미 정상이 함께 종전선언을 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문재인 정부는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어디까지나 ‘북한 비핵화’가 될 수밖에 없다. 비핵화에 집중하느라 실무적인 여유가 없다면, 굳이 싱가포르가 아니더라도 7월27일 정전협정 기념일에 맞춰서 ‘종전선언’을 하는 방안도 있다. 어떤 형식이든 북-미 정상회담이 남·북·미 정상의 ‘종전선언’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