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2월22일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공정거래법 집행 체계의 개선 논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기업집단(재벌) 계열사 사이의 ‘일감몰아주기’ 같은 부당 내부거래 과정에서 총수 일가가 회사 이익을 가로채는 ‘사익 편취’를 규제하는 장치를 마련해 시행한 것은 2014년 2월부터였다. 그 이전까지는 부당 내부거래의 혜택을 주는 계열사에만 법인 차원의 제재를 하다가, 사익 편취 규제에 따라 일감몰아주기 등 특혜성 거래의 혜택을 받는 쪽이나 그 거래를 지시하는 총수 일가도 처벌 대상에 넣었다.
하지만 새로운 장치 도입에도 실효성 논란이 이어졌다. 규제 대상을 총수 일가 지분 30% 이상(비상장사는 20%) 계열사로 국한함에 따라 공백이 많았기 때문이다. 규제장치의 집행도 느슨해 2017년까지 4년간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에 대한 제재는 한진그룹 1건(2016년)에 그쳤고, 지난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취임 이후에 하이트진로, 효성, 엘에스(LS) 등 3건이 추가됐다.
공정위가 25일 2014~2017년 자산 5조원 이상 재벌의 내부거래 실태 분석 결과를 내놓은 것은 이런 배경에서일 것이다. 공정위 자료에서 드러난 실태를 보면,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규제장치를 정비해야 한다는 그동안의 지적이 옳았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규제 대상 회사의 내부거래 비중은 2013년 15.7%에서 규제 첫해인 2014년 11.4%로 낮아졌다가 2017년 14.1%로 다시 오름세로 돌아섰다. 내부거래 금액은 2014년 7조9천억원에서 2017년 14조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일감몰아주기 규제의 허점을 재벌이 피해갔음을 보여주는 수치로,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회사 이익을 총수 일가에게 빼돌리는 행위는 소액주주 등의 재산을 훔치는 것으로, 시장경제 질서의 뿌리를 흔드는 짓이다. ‘세금 없는 부의 세습’에 악용되고 재벌에 경제력을 집중시키며 결과적으로 창업 의욕과 경제 전반의 역동성을 떨어뜨린다. 억제해야 마땅하다. 공정위가 사익 편취 규제 대상을 넓히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올가을 정기국회에 제출키로 한 것은 그런 점에서 긍정적이다.
한국 재계의 순위가 수십년째 바뀌지 않고 창업 의지가 꺾이는 현상은, 재벌가의 기득권과 여기에 바탕을 둔 부당 내부거래 탓에 신생 경제주체들이 질식당해 있기 때문이란 분석을 흘려들어선 안 된다. 사익 편취 규제를 엄정하게 집행하고 규제 대상을 넓혀, 회사 이익을 빼돌리거나 가로채는 행위를 근절해야 한다. 그래야 경제도 살아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