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일부터 ‘주 52시간 노동’ 시대가 열린다. 300인 이상 사업장이 첫 대상이고 그나마 6개월의 유예기간이 생겼다곤 하나, 우리 사회 시스템과 개인 삶의 근본적 변화가 시작됐음은 분명하다.
주 52시간은 단순히 일하는 시간의 축소만 뜻하지 않는다. 장시간·저임금 노동으로 성장을 이뤄왔던 한국 사회의 수십년간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않고선 안착될 수 없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워라밸’을 외치면서도, 정작 일찍 퇴근하거나 쉬는 날이면 수면 외엔 할 일을 못 찾는 개개인 삶의 형태와 가치관도 획기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경제·노동부터 구성원의 인식·라이프스타일까지, 전 사회의 거대한 ‘전환’이 요구되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최근 정부는 6개월 처벌유예, 유연근로제 활용 권장, 특별연장근로 업종별 허용 확대 검토 등을 잇달아 쏟아냈다. 시행이 코앞에 닥쳐 주로 ‘땜질’ 방안만 내놓는 무능과 안이함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탄력근로제에 대해 여당 원내대표가 기업인들 모임에서 “최장 6개월로 연장” 같은 발언을 불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유연근로제가 법령에 명시돼 있고 노사 합의로만 가능하다지만, 노동자의 휴식권 등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선 노동강도 강화나 노동통제 강화로 이어질 우려가 큰 게 현실이다. 게임업계 등의 무제한 노동을 가능케 했던 포괄임금제를 금지하겠다며 이번달 지침을 내놓겠다던 정부가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인 것도 무책임하다. 유연성은 제도의 취지와 원칙을 허물지 않는 게 기본 전제다. 주 52시간이 막상 닥치자 정부가 ‘유연성’만 강조한다면, 제도의 연착륙이 아니라 형해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기업과 노동계 또한 기존의 관성을 고집해선 해답을 찾을 수 없다. 특히 지금은 주 52시간이 아니더라도 기업의 혁신과 사고의 전환이 요구되는 시기다. 그동안 우리 경제는 혁신이 아니라 적은 비용(임금)으로 많은 생산량을 내는 방식으로만 생산성을 늘려왔다. 기업들이 인력증원 없이 노동강도만 늘린다면 당장 비용증대를 막고 어찌어찌 ‘무늬만 52시간’은 맞출지 몰라도, 노동의 질 개선을 통한 생산성 증대는 이룰 수 없다. 탄력근로제 기간이나 특별연장근로 업종 확대 요구의 경우 주 52시간을 실행해보며 명확한 근거를 갖고 논의해야지, 전제조건이 되어선 곤란하다.
노동계는 일자리 나누기를 위해 때론 임금이 줄어들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2004년 이후 법정 노동시간은 주 40시간임에도 장시간 노동이 가능했던 데엔, 기업은 연장근로를 돈으로 보상하고 노동자는 연장근로수당으로 부족한 임금을 채우는 식으로 이해를 일치시켰던 탓이 크다. 지금은 노동계가 인원 충원, 휴식권 보장 같은 요구보다 ‘임금 삭감도 싫고 유연성도 안 된다’는 입장만 고집하는 걸로 비치는 게 사실이다. 최소휴식시간을 강제하는 프랑스나 초과노동을 적립해 휴식으로 보상받는 독일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며칠 전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주 52시간’ 소식을 듣고 한국의 장시간 노동 현실에 놀라워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익숙함과 결별하는 데엔 고통과 혼란이 따른다. 노·사·정 모두 ‘네 탓’만 해선 고통과 혼란이 더 커질 뿐이다. 국내총생산(GDP) 규모 세계 12위라는 한국이 언제까지 장시간 노동에 의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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