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가 1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내년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대기업이 납품단가를 올려주지 않으면 다 죽는다. 내년에도 또 최저임금이 올라가는데 납품단가를 안 올려주면 적자로 갈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최근 공개한 ‘현장 방문 결과 보고서’에 나온 한 중소기업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2018년 최저임금 심의에 반영하기 위해 전국의 사업장을 돌며 노사 의견을 청취했다. 연간 매출이 조 단위가 넘는 대기업에 기계부품 등을 납품하는 이 업체 관계자는 “최저임금도 올리고 납품단가도 맞춰서 올리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납품단가는 안 오르고 최저임금만 오르니 모든 중소기업이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비단 이 업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4월 504개 중소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최저임금 인상 등 원가 상승분이 납품단가에 공정하게 반영될 것”이라고 응답한 업체는 37%에 불과했다. 납품단가 인상을 요청하고 싶어도 거래 중단 같은 보복이 두려워 대부분 입도 뻥긋하지 못한다고 한다.
갑의 양보 없는 최저임금 인상은 중소기업·자영업자와 저임금 노동자 간의 갈등을 부를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내수 침체와 대기업 횡포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에게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정부가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일자리안정자금 지원, 인건비 인상분의 납품단가 반영, 상가 임차인의 계약갱신 청구권 기간 연장,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강화, 카드 수수료 인하 등 보완 대책을 내놓은 배경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 간의 불공정한 거래 관행을 바로잡아 최저임금 인상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일자리안정자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상가임대차보호법 등 법 개정은 국회가 발목을 잡고 있다.
그 결과 최저임금 인상의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내년 최저임금 확정을 앞두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편의점 가맹점주들의 모임인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가 12일 기자회견을 열어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화, 최저임금 동결,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등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동시 휴업도 불사하겠다고 한 것이 단적인 예다.
최저임금 문제가 경제적 약자들 간의 싸움으로 흐르는 걸 막아야 한다. 정부는 최저임금에만 의존하지 말고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을 실질적으로 늘리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 근로장려세제(EITC) 확대를 병행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국회와 함께 경제민주화 추진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 대기업들은 말로만이 아니라 상생협력과 동반성장을 실천해야 한다. 우리 사회 전체가 책임을 나눠 지지 않으면 최저임금 문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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