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공약을 못지키게 된 점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최저임금 공약을 지키기 어려워졌다는 점을 인정하고 “사과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공약대로라면 2020년까지 시간당 최저임금은 1만원까지 올라야 한다. 지난 14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0.9% 오른 8350원으로 결정함으로써 이미 공약은 지키기 힘들어진 터였다. 최저임금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은 아쉬운 일이나, 지금의 경제 여건과 고용 상황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에 따른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 보전과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 등 후속 대책을 마련해 집행하는 일이다. 당·정·청은 정부의 하반기 경제정책 발표를 하루 앞둔 17일 긴급회의를 열어 후속 대책을 마련한다.
노·사·정을 포괄하는 최저임금위원회 결정을 이제 와서 되물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해 당사자들이 반발과 요구의 수준을 조절하고 보완책을 마련하는 데 지혜를 모으는 게 바람직하다. 이런 점에서 편의점주들의 모임인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가 16일 기자회견에서 “업종별, 지역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 주장을 펴면서도, 앞서 예고했던 동시 휴업이나 심야영업 중단 같은 집단행동을 미뤘다는 점에 주목한다.
후속 보완책 마련의 1차 책임은 당연히 정부·여당에 있으며 기본 방향은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감당할 능력이 부족한’ 소상공인·영세자영업자 문제와, ‘숙련도 낮은’ 노동자에 대한 대처법이다. 신용카드 수수료와 상가임대료 인하 방안과 아울러 대출금 만기 연장이나 이자 경감 같은 금융 지원책을 마련해 경영난 해소를 도와야 한다. 내년도 일자리안정자금(올해 기준 30인 미만 고용 사업주에 노동자 1인당 13만원)의 지원 한도를 3조원에서 더 늘리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만하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날 수 있는 저숙련 노동자 문제는 ‘발등의 불’이다. 인상된 최저임금은 내년부터 적용하지만, 미리 사람을 줄이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 아파트 경비원 같은 고령층이 대상에 오를 개연성이 높다. 이들을 위해서는 공공부문에서 예산을 확보해 일자리를 늘리는 방식으로 대처해야 한다. 노동시장에 머물러 있더라도 여전히 어려운 저소득 가구를 지원하는 근로장려세제(EITC)의 금액과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할 만하다.
숱하게 거론됐듯 최저임금 문제의 근저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공정한 관계가 깔려 있다. 양쪽의 ‘갑을 구조’가 굳어진 상태로는 최저임금을 두고 ‘을’끼리 싸우고, 이를 미봉하는 일이 되풀이된다. 17일 시행되는 새 하도급법이 하도급업체라는 을의 협상력을 높이는 취지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가맹점주의 짐을 덜어주는 쪽으로 가맹사업법을 고치기로 한 것에도 기대를 건다. 최저임금 인상이 내수를 살리고 경제를 성장시켜 일자리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은 대기업-중소기업 관계의 개선으로 뒷받침될 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