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23일 발표한 두산그룹 계열 두산인프라코어의 납품업체에 대한 횡포는 한마디로 ‘악질적’이다. 조사 결과를 보면, 두산은 2015년 굴착기 부품 납품업체에 납품 가격 18% 인하를 요구했다. 납품업체가 거부하자 두산은 부품 제작도면 제출을 요구해 받아냈고 이를 제3의 업체에 넘겨 개발을 맡겼다. 2016년 제3의 업체가 부품 개발에 성공해 생산을 시작하자 두산은 납품업체를 제3의 업체로 바꾸고 기존 납품업체와는 거래를 끊었다.
갑질도 이런 갑질이 없다. 납품 가격 후려치기, 기술 탈취, 거래 단절 보복 등 ‘갑질 3종 세트’가 모두 망라됐다. 공정위 관계자도 “이런 사례도 있을 것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눈으로 확인한 것은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납품업체에 대한 대기업의 횡포를 적발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납품업체들은 대기업의 요구가 부당해도 보복이 두려워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인다. 더욱이 신고는 엄두도 못 낸다. 이번 두산 건도 공정위가 매년 실시하는 하도급 업체 서면 실태조사에서 의심 사례를 찾아낸 뒤 직권조사에 착수해 적발했다. 조사 인력을 보강해서라도 직권조사를 대폭 늘려 납품업체들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한다.
처벌 수위도 지금보다 훨씬 강화해야 한다. 공정위는 두산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3억7900만원을 부과하고, 법인과 회사 임직원 5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 고발은 당연한 조처이나 과징금 액수가 적어 보인다. 하도급법 시행령이 정한 과징금 상한선이 5억원인데다, 해당 기업이 소송을 제기하면 법원에서 과징금이 과도하다는 이유로 기업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자주 있어 부과액을 올리기 어렵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공정위는 과징금 상한선을 10억원으로 높이는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데, 서두를 필요가 있다. 법원도 ‘대기업 갑질의 근절’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최저임금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납품업체가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면 그 피해는 최종적으로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돌아간다. 대기업의 기술 탈취는 납품업체들의 기술개발 의지를 꺾어 우리 경제 전체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하도급 거래 질서를 바로 세우지 못하면 소득주도성장도 혁신성장도 모두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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