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이 약관에 따라 즉시연금 미지급액을 보험 가입자들에게 지급하라는 금융감독원의 권고를 거부해 파문이 일고 있다. 즉시연금은 가입자가 한꺼번에 목돈으로 보험료를 내면 보험사가 이를 운용해 매달 연금을 지급하고 만기가 되면 원금을 돌려주는 상품이다. 노후 대비용으로 인기가 많은 상품이다.
삼성생명 즉시연금을 든 한 가입자가 지난해 “삼성생명이 약관과 달리 보험료에서 사업비 등을 떼고 운용해 연금액이 줄었다”며 금감원에 분쟁 조정을 신청했다. 금감원은 “삼성생명이 가입자를 기만한 만큼 약관에 따라 연금액을 지급하라”며 가입자 손을 들어줬다. 또 금감원은 해당 상품 가입자 전원에게 미지급액을 돌려줄 것을 전체 생보사들에 권고했다. 이른바 ‘일괄 구제’를 적용한 것이다. 삼성생명의 미지급액이 5만5천건에 4300억원으로 가장 많고, 생보업계 전체로는 16만건, 8천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삼성생명은 26일 이사회에서 “(일괄 지급은)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으며, 법원의 판단에 따라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게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지급액을 돌려받고 싶으면 가입자들이 소송을 해서 찾아가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배짱이 아닐 수 없다.
거대 보험사를 상대로 전문지식이 부족한 개인이 소송을 하려면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야 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된다. 대부분 억울해도 소송을 포기하는 이유다. 삼성의 방침은 사실상 미지급액을 돌려주지 않겠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다른 생보사들은 아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데, 업계 1위인 삼성의 결정이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보험사들은 온갖 감언이설을 동원해 가입자를 유치해놓고 보험금 지급 때는 어떡하든 지급액을 줄이려고 이런저런 핑계를 댄다. 가입자를 ‘봉’ 취급하는 것이다. 지난해 ‘자살보험금 미지급 사태’ 등 한두번이 아니다. 보험은 신뢰가 생명인데, 보험사들 스스로 불신을 키우고 있는 꼴이다.
즉시연금 미지급 사태는 집단소송제의 확대 필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기업의 부당행위로 피해를 본 특정인이 소송에서 이기면 나머지 피해자들도 함께 구제받는 집단소송제는 현재 증권 관련 분야에만 한정돼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 집단소송제 확대를 통해 기업의 부당행위를 바로잡고 소비자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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