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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박종철이 남긴 질문, 박정기가 답한 30년

등록 2018-07-29 18:19수정 2018-07-29 19:04

지난 2007년 1월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남영동 옛 치안본부 대공분실 509호실에서 박정기씨가 아들 박종철 열사의 영정 앞에 꽃을 바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007년 1월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남영동 옛 치안본부 대공분실 509호실에서 박정기씨가 아들 박종철 열사의 영정 앞에 꽃을 바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아들은 나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건너가는 다리를 놓아주었다”고 아버지는 평소에 말했다. 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가 28일 별세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모글을 올리고 시민들과 정관계 인사들의 조문이 잇따르는 것은 그가 단순히 ‘열사의 아버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헤쳐온 지난 30여년, 그는 아들이 우리 사회에 남긴 과제에 답해 민주주의와 인권이 살아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오롯이 헌신해왔다.

부산시 수도국 공무원으로 정년 뒤 ‘목욕탕 주인’이 되길 바랐던 평범한 그의 삶은 87년 1월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막내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송두리째 바뀌었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와 함께 박정기씨가 한국 민주화운동 역사에서 갖는 상징적 의미는 남다르다. 6월항쟁의 선두에는 이들이 중심이 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가 있었다. 또 1988년과 1998년 장기농성을 통해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법’ 제정을 이끌어냈다.

오랜 세월 유가협 회장을 맡으면서도 그는 장기농성장에 가장 먼저 나와 골목을 쓸고 걸레질을 하는 ‘자발적 청소당번’이기도 했다. 1991년 강경대 열사 사건 때는 법정소란죄로 석달간 교도소 생활을 하기도 했다. 아들의 억울한 죽음이 고통스러운 만큼, 다른 아들딸들이 죽어가는 현실이 그로 하여금 제2의 삶을 살게 했으리라. 점점 흰머리가 늘고 허리가 구부러지면서도 연대가 필요한 곳에는 늘 그가 보였다. 아들의 30주기였던 지난해 1월14일 촛불집회에도 그는 함께했다.

박종철 열사가 고문당하고 스러졌던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는 이제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지난 3월 문무일 검찰총장이 병원으로 박정기씨를 찾아 현직 검찰총장으로는 과거사 피해자에게 처음으로 직접 사과하기도 했다.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세상이 바뀌고 있음에,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음에 아버지의 마음은 조금 편해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최근 기무사 쿠데타 검토 문건에서 보듯,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직 완전하지 못함을 알기에 그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진다.

31일 그는 경기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 있는 아들 곁에 몸을 누인다. 31년 만에 만난 아버지에게 아들도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것 같다. 고인의 영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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