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경제팀의 정책 신호가 엇박자를 낸다는 비판을 받을 만한 정황이 다시 불거졌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오는 6일 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하는 일정을 두고서다. 애초 기재부는 김 부총리의 방문 당일에 삼성으로부터 투자·고용 계획을 전달받아 직접 발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가 청와대 쪽의 제동으로 발표 계획은 접었다고 한다. 엘지(LG)를 비롯한 다른 대기업 방문 때와는 모양새가 달라지는 셈이다.
사실 정부 고위당국자의 방문에 맞춰 기업이 화답하는 식으로 투자·고용 계획을 발표하는 것 자체가 낡은 모습이다. 기업 투자계획의 진정성까지 의심받을 수 있다. 김동연 부총리가 ‘현장 소통간담회’의 일환으로 지난해 말부터 엘지·에스케이(SK)·현대차·신세계 4개 그룹을 방문한 뒤 벌어진 일들은 이런 걱정을 하게 만들었다. 해당 그룹의 투자·고용 계획을 정부에서 직접 발표하자 양쪽에서 모두 비판이 나왔다. 한쪽에선 ‘재벌을 향한 구애’라 꼬집고, 다른 쪽에선 ‘기업 팔 비틀기’라 비판했다. 김 부총리의 삼성 공장 방문을 앞두고 다시 이런 논란이 일자, 청와대가 나서 정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요즘의 국내외 사정에 비추어, 경제정책 책임을 진 김 부총리의 답답한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일자리 정부’라는 깃발이 머쓱하게 고용난이 이어지고 있으니 초조할 법도 하다. 현 정부가 ‘친노동 반기업’이라는 식의 지나친 비판도 기업 현장 방문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급하다고 순리를 거스를 경우 더 큰 부작용을 낳기 쉽다. 투자·고용 계획의 결정 주체는 기업이며, 정부는 정책으로 환경을 조성할 뿐이라는 상식선을 벗어나면, 그 뒤 이어지는 정부의 재벌정책 결정이나 해당 기업에 얽힌 사법적 판단까지 두루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이는 정부에도, 기업에도 유익하지 않다.
이번 소동을 보면서, 청와대의 정책 조율이 적절했는지도 의문이 든다. 김 부총리를 제어할 거면, 삼성 공장 방문 이전에 다른 기업들을 방문할 때는 왜 눈감고 있었느냐는 또 다른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가 했다는 ‘삼성에 구걸한다’는 표현도 너무 지나치다. 최저임금 인상을 두고 이미 한 차례 큰 혼란을 겪고도 경제팀의 조율 역량이 아직 부족한 거 같아 많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