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월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 후 서로 손을 잡고 위로 들어 보이고 있다. 2018.4.27
국방부가 하반기에 발행할 ‘2018 국방백서’에서 ‘북한정권과 북한군은 적’이라는 문구를 삭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자, 보수 야당·언론이 ‘시기상조’라며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 나섰다. 이들이 내세우는 반대 논리는 너무 뻔해 낡은 레코드판을 반복한다는 느낌을 준다. 남북은 4·27 판문점 선언에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 이런 획기적인 변화에 발맞춰 국방백서의 표현을 바꾸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 논란거리로 삼을 일은 아니다.
보수 언론은 “적대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현실에서 엄연히 적대상태가 존재하는 것은 다른 얘기”라며 ‘적’ 표현 삭제를 서둘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에 적대상태가 존재하는 것과 그 상대방을 공개적으로 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서로 신뢰를 구축해야 할 대화 상대방을 ‘적’이라고 공언하는 것은 대화하지 말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보수 언론은 북한 노동당 규약이 ‘전국적 범위에서 인민민주주의 혁명과업 완수’라는 문구를 바꾸지 않고 있는데 우리만 적 개념을 포기하느냐는 논리도 끌어들인다. 번지수가 틀린 얘기다. 노동당 규약에 대응하는 우리 헌법은 명백히 ‘자유민주적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을 추진한다고 돼 있다. 국방백서를 들먹일 상황이 아니다.
국방백서에 ‘적’ 표현이 들어간 것은 남북관계가 악화된 보수 정부 시기에 벌어진 일이다. 1994년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 뒤 ‘주적’이란 개념이 처음 들어갔지만,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 개선에 따라 2004년부터 ‘주적’ 표현이 빠지고 ‘직접적 군사위협’ 같은 다른 말로 대체됐다. 그랬던 것이 2010년 연평도 포격 뒤 다시 북한군을 적으로 규정하는 문구가 들어갔다. 그러나 이 문구조차 2016년 국방백서에서는 ‘북한의 위협이 계속되는 한’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판문점 선언에서 적대행위를 중지하기로 한 마당에 ‘적’이라는 표현을 고집할 이유는 사라졌다고 본다.
국방부는 5년마다 발간하는 군 정신교육 기본교재에서도 ‘북한=적’이라는 표현을 삭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 교재에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종북세력, 친북세력, 주사파’ 등의 문구도 들어 있다고 하는데, 색깔론을 부추기고 군의 건강한 정신 함양을 해치는 낡은 언어들인 만큼 함께 삭제하는 것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