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9일 평양 백화원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한 뒤 악수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9일 ‘9월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평양 백화원영빈관에서 둘째 날 정상회담을 마치고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역사적인 공동선언에 서명한 뒤, 기자회견을 통해 이 선언의 의미를 밝혔다. 두 정상은 평양공동선언의 부속문서로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도 함께 채택했다. 사실상 남북의 ‘종전선언’이라 할 군사분야 합의서를 채택해 항구적 평화의 새 역사를 썼다는 점에서 평양공동선언의 의의는 배가됐다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서울을 떠나기 전 이번 정상회담에서 선언이나 성명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으나, 정상회담 결과는 지난번 판문점선언을 구체화하는 수준을 넘어 한반도 평화에 돌이킬 수 없는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이 기자회견에서 전 세계에 비핵화 의지를 육성으로 밝힌 것은 이번 공동선언의 의의를 높였다. 김 위원장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연내에 서울을 답방하기로 한 것도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중대한 결심이라고 할 만하다.
이번에 두 정상이 합의한 평양공동선언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군사분야 합의다. 두 정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남북 국방 수장이 서명한 군사분야 합의서는 군사적 긴장 완화와 전쟁 위험 종식에 결정적인 한발을 내디딘 문서라고 할 수 있다. 먼저 공동선언에서 두 정상은 비무장지대를 비롯한 대치지역에서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한반도 전 지역에서의 실질적인 전쟁 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해소로 이어가기로 했다. 두 정상이 보증한 부속합의서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무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것은 사실상의 불가침 선언이라고 할 만하다. 이어 남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무력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했다. 판문점선언의 내용을 여러 층위에서 심화하고 구체화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부속합의서에서 남북이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충돌을 방지하고 시범적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기로 한 것은 이 지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한걸음 더 전진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남북이 한강 하구 공동이용을 위한 군사적 보장 대책을 마련하기로 한 것도 눈에 띈다. 특히 이번에 남북이 군사공동위원회를 조속히 가동하기로 합의한 것은 군사적 긴장 완화와 전쟁 위험 방지의 제도화를 위해 중요한 진전이다. 군사공동위원회를 띄우게 되면 상시적으로 군사분야 합의서 이행 실태를 점검할 수 있고 우발적인 무력충돌의 방지를 위한 긴밀한 소통과 협의를 할 수 있다.
평양 정상회담에서 가장 큰 관심을 모은 것은 ‘비핵화’ 문제다. 이 분야에서 남북 정상은 판문점선언의 내용을 뛰어넘는 비핵화 의지를 밝히고, 비핵화 초기 조처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대안을 언급했다. 정상선언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루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실질적이고 조속한 진전을 강조한 것은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보여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이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아래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명시한 것이 눈길을 끈다. 북한은 그동안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 해체 작업을 진행해왔지만, 관련국 전문가들의 참관이 없다는 이유로 ‘보여주기식 폐기’라는 말이 많았다. 이번 합의는 국제사회의 불신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북쪽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처를 계속 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물론 이 조처는 ‘미국이 6·12 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지만, 미국이 종전선언에 앞서 비핵화 조처를 할 것을 요구한 데 대한 응답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동창리 엔진시험장을 폐기함과 동시에 영변 핵시설 폐기를 공개적으로 약속함으로써 미국이 종전선언으로 응답할 토대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북한의 이런 제안에 미국의 호응을 끌어내는 것이다.
이번 공동선언에서 더욱 눈에 띄는 것은 김 위원장이 육성으로 비핵화 의지를 밝힌 대목이다. 김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문재인 대통령과) 확약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밝힌 적은 여러 차례지만, 이렇게 공개 석상에서 직접 목소리를 낸 것은 처음이다. 이와 관련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공동선언 내용 이외에도 많은 논의를 했다”고 말한 데 주목한다. 어쨌든 발표된 내용만 보면 애초 미국이 기대했던 수준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앞으로 북-미 간 협상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공동선언에 대한 미국의 반응이 즉각적이고 긍정적인 점은 반가운 일이다.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25일 미국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한다. 이 자리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이 재개되고,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조속히 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문 대통령의 방미 전에 특사나 외교 당국자를 보내 정상회담 내용을 상세히 전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번 선언은 여러 면에서 판문점선언의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내용을 뛰어넘어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담아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가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획기적인 돌파구 마련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문 대통령은 평양 방문 마지막날인 20일 김 위원장과 함께 백두산을 찾기로 했다. 두 정상이 함께 남북 모두의 상징과도 같은 백두산을 오르며 겨레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더 깊고 신실한 관계를 맺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