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5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나오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5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데 이어 또다시 ‘재벌 총수 봐주기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고법 형사8부(재판장 강승준)는 면세점 사업 특혜를 바라고 박근혜 전 대통령 쪽에 70억원의 뇌물을 준 혐의와 경영 비리 혐의로 기소된 신 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앞서 신 회장은 따로 열린 1심에선 뇌물 공여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경영 비리 혐의는 징역 1년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같이 신 회장이 면세점 청탁의 대가성을 인식하고 최순실씨의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뇌물로 주었다는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의 요구에 불응할 경우 기업 활동 전반에 불이익을 받을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의사결정의 자유가 다소 제한된 상황에서 뇌물 공여 책임을 엄히 묻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나는 대통령에게 겁박을 당한 피해자”라는 신 회장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앞서 정경유착 근절의 필요성을 강조한 1심 재판부의 판단과 대비된다. 당시 1심 재판부는 “대통령의 요구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선처하면 어떤 기업이라도 경쟁을 통과하기보다 뇌물을 주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며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최상위인 대통령과 재벌 총수 간의 뇌물을 엄히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항소심 판결을 두고 재판부가 재벌 총수 봐주기용으로 불리는 ‘3·5 법칙’(징역 3년·집행유예 5년)을 답습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비리를 저지른 재벌 총수에게 1심에선 실형을 선고한 뒤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어주는 행태를 되풀이했다는 것이다. 재판부 스스로 불신을 자초한 셈이다.
신 회장의 집행유예는 또 하나의 ‘유전무죄 판결’로 기록될 것이다. 재판부도 이를 의식한 듯 “재계 5위 롯데그룹의 기업 활동이나 총수 일가의 경영권, 재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정 등은 판단에 고려할 사정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재벌 총수는 법 위에 군림한다’는 인식만 더욱 굳어지게 됐다.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치르는 게 상식이다. 재벌 총수라고 예외일 수 없다. 상고심에서 항소심 판결을 바로잡고 재벌 총수의 정경유착에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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