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장관의 ‘5·24 조처 해제 검토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국정감사장에선 강 장관의 발언을 놓고 여야 공방이 11일까지 이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 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해 논란이 외교 차원으로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강 장관의 답변도 문제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주권 간섭’ 소지까지 있어 더욱 부적절해 보인다.
논란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강 장관인 것은 분명하다. 강 장관은 10일 ‘5·24 조처를 해제할 용의가 있느냐’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관계부처와 검토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또 ‘금강산 관광을 못 하는 것이 5·24 조처 때문이냐’는 질문에도 ‘그렇다’고 답했다. 강 장관의 답변은 두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먼저, 사실관계의 오류다. 5·24 조처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천안함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취한 대북 제재 조처다. 2008년 박왕자씨 피살에 대응해 이뤄진 금강산 관광 중단과는 관련이 없다.
나아가 강 장관은 5·24 조처의 주무장관이 아닌데도, 주동적으로 해제를 검토하는 것처럼 말했다. 강 장관은 해당 발언이 문제가 되자, 범정부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며 발언을 정정하고 사과했다. 장관이 해당 사안을 정확히 알고 대응하는 것은 기본이다. 문제가 이렇게 커진 데 강 장관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사실상 실효가 다한 5·24 조처 문제를 놓고 큰일이나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야당의 태도도 바람직하지 않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달 남북군사합의서와 관련해 강 장관에게 항의했다는 것을 대서특필한 일부 보수 언론도 볼썽사납기는 마찬가지다. 한-미 간에는 조그만 이견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발상으로는 한반도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갈 수 없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5·24 조처 해제 검토 발언에 대해 ‘한국은 우리의 승인 없이 제재 해제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관계 개선에 공개적으로 제동을 거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발언이다. ‘승인’이라는 비외교적 표현을 쓴 것은 더 큰 문제다. 미국이 허락하는 것만 하라고 윽박지르는 꼴이어서, 주권에 대한 간섭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한국을 속국으로 여기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올 수 있다. 청와대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을 ‘모든 사안을 한-미 간 협의 아래 진행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이해했지만, 이런 무례한 발언이 자칫 한-미 공조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미국 정부는 유념해야 한다.
한반도 문제는 주권국가로서 우리가 반 발자국 앞서가며 주변국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북-미 비핵화 협상이 살얼음판을 걷듯 진행되고 있는 때인 만큼, 우리 정부의 대응도 사안마다 유리그릇 다루듯 신중에 신중을 기해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