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에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은 지구상 마지막 냉전체제를 해체하는 일”이라며 “기필코 분단을 극복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교황청이 마련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특별 미사’ 뒤 기념 연설에서 남북이 평양공동선언을 채택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핵무기 없는 평화의 한반도’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교황청이라는 상징성 높은 장소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구축 의지를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의 유럽 순방 행보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대북 제재 완화’ 거론이다. 문 대통령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 조처가 되돌릴 수 없는 상태까지 왔다는 판단이 선다면, 유엔 제재의 완화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더욱 촉진해야 한다”며 프랑스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선도적 역할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앞서 영국 <비비시>(BBC)와 한 회견에서도 ‘제재 완화’ 문제를 거론했다. 제재 완화가 비핵화 촉진 요소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이해시키는 데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본다. 이런 노력이 비핵화 조처에 북한이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우호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평가할 만하다.
문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미국 내부에 ‘너무 앞서간다’는 경계의 시선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17일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남북 대화는 비핵화와 연결돼야 하며 한-미의 목소리가 일치돼야 한다”고 강조한 데서 이런 경계심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여론이나 행정부 일부의 시각에 매몰될 경우, ‘비핵화 완료 후 제재 해제’라는 도식에 모두가 빨려드는 잘못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는 비핵화가 촉진되기는커녕 오히려 장애물에 부닥치기 쉽다.
그런 점에서 조윤제 주미 대사가 16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한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조 대사는 ‘남북관계 과속론’과 관련해 “남북관계 발전은 비핵화 과정과 함께 가야 하고 국제 제재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남북관계가 북-미 협상보다 조금 앞서 나가는 것이 북-미 협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 이루어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협상의 과정을 돌이켜보면, 조 대사의 발언이 현실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예고된 2차 북-미 정상회담의 날짜와 장소를 확정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북한은 ‘비핵화에 상응하는 제재 완화’를 다방면으로 요구하고 있다. 협상이란 상대의 선의를 긍정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인 만큼, 문 대통령의 ‘제재 완화’ 발언은 때에 맞는 말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미국과 사안마다 긴밀히 협력하되, 한반도 운전자로서 북한의 비핵화 촉진에 도움이 될 방안을 반 발자국 앞서서 제시하고 관련국들을 설득해 나가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프랑스를 국빈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현지시각) 프랑스 대통령궁인 엘리제 궁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연 공동기자회견에서 박수치고 있다.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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