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시절 정부가 <조선일보> 기사를 통해 한국은행에 기준금리 인하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구체적으로 제기됐다. 청와대와 금융위원회 사이에 금리 인하 압력 논의가 이뤄져 조선일보 기사로 구체화됐음을 보여주는 정황이 드러났고, 그즈음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실제로 기준금리를 잇따라 내렸다. 한은으로 연결되는 부분의 고리는 불분명하지만, 정권과 언론사로 이어지는 ‘부적절한 유착’ 정황만 해도 놀랍다.
<한국방송>(KBS) 보도에 이어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한은 국정감사에서 불거진 박근혜 정권-조선일보의 금리 인하 압박 정황은 매우 구체적이다. 2015년 2월과 3월 정찬우 당시 금융위 부위원장이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가 한 예다. “강효상 선배(당시 조선일보 편집국장, 현 자유한국당 의원)와 논의했슴다.” “형님, 조선이 세게 도와줬으니 한은이 금리 50bp(0.5%포인트) 내리도록 서별관회의 열어서 말씀하셔야 합니다.” 두번째 문자 전송 직전 조선일보는 1면에 ‘경기 부양 팔짱 낀 한은의 시대착오’ ‘3저 수렁 빠진 경제, 한은이 끌어올려야’라는 제목의 기사를 잇따라 내보냈다.
이런 행태는 금리 결정을 앞두고 한은 바깥에서 여러 의견을 공개적으로 내놓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정부 당국자의 공개적인 의견 표시도 논란을 일으키기 쉬운 터에, 내밀한 공간에서 비밀작전 하듯 금리 압박을 일삼은 짓의 부적절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금통위가 그해 3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50bp 내렸다는 사실은 의심을 키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국정감사에서 “당시는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출 정도로 우리 경제가 많이 어려웠고 정부로부터 압박을 받지도, 금통위원들에게 전달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사실이기를 바라지만, 의심을 완전히 떨쳐내기는 어렵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낸 자료에, 박근혜 정부의 압박 탓에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했다는 의심을 품게 하는 정황이 여럿이라는 점에서다. 예컨대 2014년 8월14일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수첩에 ‘금리 인하 0.25%↓ → 한은은 독립성에만 집착’이란 내용이 있고, 한은은 당일 기준금리를 2.50%에서 2.25%로 낮췄다.
한은 기준금리는 은행 금리와 국내외 자금 흐름은 물론이고,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자산가격,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를 비롯한 실물경제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주요 변수다. 독립성을 보장받는 금통위에 결정 권한을 주는 것은 이런 중대함 때문이다. 특정 정권의 경제 성적표를 분칠하려고 기준금리를 내리도록 했다면, 불특정 다수에 피해를 입힌 ‘정책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는 말을 과장으로만 돌릴 수 없다. 행정부나 국회 차원에서 유착 관계의 실상을 밝히고 기록으로 남겨 재발 방지의 경계용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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