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일 ‘무죄’ 판결을 내렸다. 2004년 유죄 판결 뒤 14년여 만에 스스로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이로써 그동안 2만여명의 전과자를 양산해온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도 막을 내리게 됐다. 뒤늦게나마 사법부가 시대 흐름에 부응한 것은 다행스럽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 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이날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오승헌(34)씨 상고심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형사처벌은 헌법상 양심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거나 그 본질적 내용을 위협하는 것”이라며 양심적 병역거부 행위가 처벌의 예외 사유를 정한 병역법 제88조 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국방의 의무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집총을 거부하는 등 소극적인 양심 실현 행위까지 처벌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형사처벌의 정당성 여부를 둘러싼 수십년의 논란에 사법적 종지부를 찍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6월 ‘대체복무 제도 불비’를 이유로 위헌 결정을 했으나 이번에 대법원은 형사처벌 자체를 문제삼는 등 진일보한 판단을 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특히 ‘자유민주주의는 다수결 원칙에 따라 운영되지만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을 인정해야만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거나 ‘우리 공동체에서 다를 수 있는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란 판시는 이번 판결의 가치를 돋보이게 한다.
이번 판결로 대법원에 있는 227건을 비롯해 전국 법원에서 심리 중인 930여건의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서 무죄 판결이 예상된다. 문제는 대체 입법 등 향후 대책이다. 우선 대법원 판결이나 하급심에서 검찰의 공소 취소 등으로 무죄가 확정되는 사례가 잇따를 것에 대비해 대체복무 방안이 서둘러 마련돼야 한다. 국방부와 법무부, 병무청이 참여하는 대체복무제 마련 실무추진단 등에 따르면 복무기간은 현역병(육군 기준)의 2배인 36개월, 복무 분야는 교도소·구치소로 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기간과 장소 면에서 징벌적 성격이 짙다고 비판한다. 국제기준에 비춰 타당한 지적이다. 기간과 분야를 종합적으로 아우르는 다양한 선택지를 놓고 좀더 검토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