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의 국민연금 개편안이 대통령한테서 퇴짜를 맞아 미궁에 빠졌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오른쪽)이 지난 5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국민연금기금운영위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뒤로 국민연금공단 노조원 등 시민단체회원들이 ‘국민합의 없는 기금체계 개편을 반대한다’며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일 보건복지부의 국민연금 개편안을 ‘보험료 인상 부분이 국민 눈높이와 맞지 않는다’며 돌려보냈다. 대통령한테 ‘퇴짜 맞은’ 개편안의 구체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보험료를 더 내고 연금을 더 받거나, 연금은 지금처럼 받으면서 보험료만 더 내도록 하는 내용을 이리저리 조합한 방안일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복지부는 15일 공청회에서 내용을 공개하고 11월 말 개편안을 국회에 낼 계획이었지만, 대통령의 전면 재검토 지시로 이를 미룰 수밖에 없게 됐다.
국민연금만 따로 놓고 보면, 복지부 안대로 어쨌든 보험료를 더 내는 쪽으로 가는 게 합당하다. 기금이 점점 고갈되는 쪽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료를 더 내거나, 연금을 덜 받거나, 또는 둘 다 하지 않고선 국민연금 체계가 지속될 수 없다.
문제는 이게 반사적으로 군인연금, 공무원연금 같은 특수직 연금과의 형평성 시비를 폭발시킨다는 점이다. 연금의 역사, 목적, 구조의 차이 탓에 단순 비교하기 힘든 점을 고려하더라도 국민연금 가입자들을 다독이기엔 격차가 너무 두드러진다. 국민연금 개혁의 배경인 기금 부족 문제가 다른 연금에선 훨씬 심하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1973년, 2002년부터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군인연금, 공무원연금을 제쳐두고 2042년 적자, 2057년 기금 고갈에 이른다는 국민연금을 개혁하자는 논리가 힘을 얻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까지 논의 테이블에 같이 올려놓고 국민의 노후보장 방안을 찾아내는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여러 연금 제도를 연계해서 논의를 벌이면 비교 가능성을 높여 불필요한 오해를 푸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공무원연금 쪽이 보험료를 훨씬 더 많이 낼 뿐 아니라 퇴직수당은 민간에 견줘 절반쯤에 불과하고, 소액 연금 수급자들마저 기초연금을 아예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 형평성 시비의 강도를 낮출 수 있을 것이다.
개별 연금별로 개편을 추진하면 ‘기금 고갈 시점 부각→보험료율 인상과 소득대체율 하향 조정→다른 연금에 대한 개편 압력 증가’라는 악순환을 무한 반복하게 된다. 통합과 연대의 가치를 추구하는 공적 연금이 도리어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고, 이는 결국 공적 연금에 대한 총체적 불신으로 이어진다.
연계 논의를 할 때, 연금 연구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는 연금 간 통합운영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공무원연금을 두갈래로 나눠 한쪽은 국민연금에 합쳐 운영하는 방안이 있다. 미국, 일본을 비롯해 많은 나라에서 공무원연금을 이렇게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2006년 공무원연금공단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연금 통합방안에 대한 연구를 맡겼던 데서 알 수 있듯 비현실적 방안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공무원 최대 노조인 공무원노조총연맹도 2014년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의 통합을 요구한 바 있으니, 한번 논의를 벌여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