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과거사 손해배상 사건에서 헌법재판소의 ‘일부 위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배상 책임을 부인하는 주장을 내놓았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 등 청계피복노조 관계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파기환송심에서다. 기존 대법원 판례를 따랐다고는 하나 민주화운동을 탄압했던 독재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를 민주 정부가 그대로 이어받는 모양새여서 매우 부적절해 보인다. 더구나 과거사 사건들이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대상으로 지목돼온 상황에서, 현 정부가 이미 위헌이라고 판단한 헌재 결정마저 부정하고 나선 것은 놀라울 정도다.
정부는 지난달 서울중앙지법 민사6부에 낸 준비서면에서 “대법원은 파기환송 전 판결에서 ‘원고들이 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라 지원금을 수령한 이상 다시 위자료를 청구하는 것은 부적법하다’고 판시했다”며 기각을 요청했다. 기존 대법원 판례가 ‘헌재의 한정 위헌 결정은 법원의 법령 해석·적용 권한에 대해 기속력을 가질 수 없다’고 돼 있는데 지난 8월 헌재의 ‘일부 위헌’ 결정은 사실상 ‘한정 위헌’ 결정이란 취지에서다.
정부의 이런 태도는 문제가 적잖다. 우선 헌재의 결정을 임의로 ‘한정 위헌’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가당찮다. 당시 헌재는 보상금을 받으면 재판상 화해가 성립한 것으로 본다는 민주화운동보상법 조항에 대해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까지 인정하지 않는 것은 배상청구권 침해”라며 ‘일부 위헌’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지난달 11일 국정감사에서 김헌정 헌재 사무처장도 “명백한 일부 위헌”이라며 이를 재확인했다. 더구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를 배상하라는 헌재 결정을 민주 정부가 앞장서 부인하는 황당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헌재의 지난 8월 일부 위헌 결정은 긴급조치 피해 헌법소원 각하 등으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결국 입법을 통해 해결해야 할 대목이 적잖다. 그런데 대법원이 헌재의 이런 반쪽짜리 결정마저 적극적으로 반영하지 않으려는 것은 유감이다.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한정 위헌인지 일부 위헌인지 여러 견해가 있다”며 애매하게 답변했다. 사법농단·재판거래 의혹의 당사자인 대법원은 입법과 관계없이 스스로 판례 변경 등을 통해 피해 구제에 적극 나설 책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