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토종 ‘행동주의 펀드’인 케이씨지아이(KCGI)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에 도전장을 낸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란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는 기업의 주식을 매수한 뒤 경영 참여를 통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펀드다. 증권가에서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로 알려진 강성부 대표의 케이씨지아이는 최근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지분 9%를 매입해 조양호 회장 일가(29%)에 이어 2대 주주가 됐다. 증권가에선 케이씨지아이가 내년 한진칼 주주총회 때 이사진 교체를 시도할 것으로 본다. 국내 행동주의 펀드가 재벌그룹을 상대로 경영 참여 의사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케이씨지아이가 한진그룹을 겨냥한 것은 총수 일가의 각종 갑질과 비리 탓에 사회적으로 지배구조 개선 여론이 높기 때문이다. 한진칼 지분 8.4%를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도 지난 5월 조 회장에게 경영 쇄신을 요구한 바 있다. 44.9%의 지분을 갖고 있는 소액주주 가운데서도 케이씨지아이의 움직임에 보조를 맞추는 주주들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엘리엇매니지먼트 등 외국계 펀드와 달리 ‘국부 유출’ 논란에서 자유로워 이른바 ‘애국심 마케팅’이 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외국계에 이어 국내 펀드까지 경영권 공격에 나서면 기업의 안정적 경영 활동이 위협받을 수 있다”며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필 같은 경영권 방어 장치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행동주의 펀드들이 기업의 중장기적 성장보다는 단기 시세차익이나 배당 확대를 노리기 때문에 오히려 기업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불법과 비리를 저질러 기업 가치를 떨어뜨린 총수 일가의 경영권까지 보장하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총수 일가의 경영권이 성역일 수는 없다. 경영권을 총수 일가의 전유물로 여기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기업관이다. 부도덕하고 무능한 경영진을 교체해 기업 가치를 높인다면 주주 전체와 임직원은 물론 국가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국내 기업들의 후진적 지배구조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다. 지배구조 개선은 저평가된 한국 증시에 상승 동력이 될 수 있다. 또 기업들이 사전에 경각심을 갖게 하는 ‘예방 효과’도 적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대주주들은 경영권 방어 장치를 요구하기에 앞서 경영의 투명성과 도덕성을 높이는 데 힘쓰는 게 마땅하다. 케이씨지아이를 비롯한 행동주의 펀드들도 세간의 우려를 씻어낼 수 있도록 문제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개선해 기업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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