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시위 참석자들이 가정폭력에 대한 강력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살인자 아버지를 차라리 사형시켜달라”는 딸들의 절규가 사회를, 마침내 국가를 움직였다. 27일 발표된 가정폭력 방지대책은 법 개정 사항이 즐비하고 몇몇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동안 시급하게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된 과제의 상당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가정폭력은 집안문제가 아닌 명백한 범죄’임을 분명히 한 것은 의미가 크다.
대책의 큰 방향은 가해자 처벌 실효성을 높이고 피해자 보호를 강화한 것이다. 우선 가정폭력 가해자에게 형사소송법의 현행범 체포 조항을 적용하도록 명시한 것이 눈에 띈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물리적 폭력이 중단됐더라도 그 직후거나 흔적이 남아 있는 경우 등도 포괄적으로 현행범으로 간주된다. 사실상 무용지물이던 접근금지 명령을 개선해, 명령을 어기면 최대 징역형이 가능하도록 했고 내용도 사무실·집 같은 특정 장소 위주에서 피해자나 가족 구성원 등 특정 사람 위주로 바꾸기로 했다. 피해자 자립을 돕는 전문 프로그램이 신설되고 보호시설 퇴소자에게 자립지원금을 지급한다는 등의 방안도 들어갔다.
1997년 가정폭력처벌법이 제정되고 2013년 종합대책이 발표됐지만, 피해자들에게 국가와 공권력의 보호는 먼 얘기였다. 지난달 강서구 아파트에서 전 남편에 의해 살해된 40대 여성을 비롯해 그동안 있었던 수많은 희생을 생각하면 이날 발표가 늦었다는 느낌 또한 지울 수 없다. ‘가해자의 보호처분을 통한 가정의 평화와 안정 회복’ 등이 명시된 가정폭력처벌법 목적 조항 개정이 언급되지 않은 점, 상담을 받는 조건으로 가정폭력 가해자를 기소유예 처분하는 제도에 대해 폐기가 아니라 실태 분석 뒤 개정 검토 선에서 그친 점 등은 한계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더 적극적인 검토를 촉구한다. 나아가 피해자의 명시적인 처벌 요구가 있어야 처벌하는 반의사불벌죄의 폐지도 논의가 시급하다. 자녀를 위해, 경제적 이유로, 또는 보복이 두려워 말 못 하는 가정폭력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지 않는가.
국회가 법사위에 계류된 관련 법안들의 연내 통과에 신속하게 나서길 기대한다. 현장에 출동하는 경찰의 역할이 관건인 만큼 제대로 된 매뉴얼과 교육 방안 등도 여성단체 등과 밀접히 연계해 마련해야 한다. 여성가족부는 “가정폭력은 명백한 범죄이며 정서적 폭력도 폭력이란 인식이 확고히 정착될 수 있도록 인식 개선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가족 유지’란 명목으로 폭력에 너그러웠던 야만의 시대를 온 사회가 함께 끝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