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오전 국회 예결소위원장실에서 소위 파행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예결소위 간사 회동이 열리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470조5천억원에 이르는 정부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심사가 28일 재개됐지만 시간이 촉박한데다 편의주의적 관행 등으로 밀실·졸속 심사를 피하기 어렵게 됐다. 4조원 세수 부족 문제로 한동안 파행했던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가까스로 정상화됐다. 하지만 예결위 심사 법정시한이 30일로 다가온 탓에 이른바 ‘소소위원회’ 중심의 ‘밀실 심사’ 구태가 되풀이될 전망이다.
예결위 ‘소소위’는 예결위원장과 예결위 여야 간사, 기획재정부 책임자가 모여 비공개로 심사를 진행하는 것을 말하는데,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 국회법에 근거를 두고 15명 안팎의 예결위원으로 구성하는 예결위 예산안조정소위원회(예산소위)와는 성격이 다르다. 예산소위는 기자들에게 공개되고 속기록이 남지만, ‘소소위’는 기록도 남기지 않는다. 이런 탓에 소소위에선 예산의 적절성이나 타당성보다 당내 ‘실세’들의 유불리에 따라 정치적 거래가 이뤄지곤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지난 26일 예산소위에서도 농림축산식품부 및 관계기관 심사를 하면서 9건 중 4건을 소소위로 넘겨버렸다.
송언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25일 ‘시설 아이 돌봄서비스 지원’ 예산 61억원을 전액 삭감해야 한다고 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고 철회하게 된 건, 그의 발언이 예산소위에서 공개리에 진행된 탓이다. 만일 이와 같은 주장이 ‘소소위’에서 누군가에 의해 제기됐다면 아무런 제동 없이 예산이 전액 삭감되는 ‘비운’을 겪었을 가능성이 높다.
국민 ‘혈세’라 불리는 예산을 정치인들이 눈먼 돈처럼 취급하는 관행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예산 당사자들의 반발 등을 이유로 비공개 논의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이는 것 같지만, 예산 심사의 본령을 망각한 편의주의적 발상일 뿐이다. 국회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다양한 이해와 요구를 최대한 합리적으로 조정해 반영하는 것이다. 예산 심사는 이런 국회의 가장 큰 책무라 할 수 있다.
‘관행’이란 이름으로 소소위 중심의 밀실 예산심사를 계속하는 건 용납하기 어렵다. 이번 예산 심사부터라도 소소위 등에서 이뤄진 비공개 논의내용을 사후에 모두 공개하는 게 옳다. 필요하다면 밀실 예산심사를 막는 제도적 장치를 추가로 도입해야 한다. 국회가 이제는 예산을 밀실에서 졸속으로 심사하는 구태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