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의 한 건물에 불과 5m 간격으로 편의점 2곳이 들어서 있다. 사진 <매경이코노미>
편의점은 국내 자영업의 ‘공급 과잉’ 실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6월 기준으로 전국 편의점 수가 4만845개로 4만개를 넘었다. 한 건물에 편의점이 2곳, 심지어 3곳까지 들어선 데도 있다. 인구 대비로 따지면 1268명당 1곳꼴이다. ‘편의점 왕국’이라는 일본(2336명당 1곳)보다 갑절 가까이 많다. 가맹점이 늘어날수록 가맹수수료를 더 많이 챙기는 구조여서, 본사가 마구잡이로 점포를 내줬기 때문이다. 과도한 출점 경쟁 탓에 가맹점 매출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심야영업 강요와 과도한 위약금 등 불합리한 계약 조건도 가맹점주들을 힘들게 만든다. 여기에 최저임금 인상까지 겹치면서 가맹점주들의 어려움이 더 커졌다.
지에스(GS)25 씨유(CU) 세븐일레븐 등 주요 편의점 본사들의 모임인 한국편의점산업협회가 4일 편의점 과밀화 해소와 가맹점주 경영 여건 개선 방안을 담은 ‘자율규약’ 선포식을 열었다. 편의점 본사들이 스스로 규약을 만들었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심사를 거쳐 승인했다. 전국 편의점의 약 96%가 자율규약 적용을 받게 된다. 프랜차이즈업계에서 자율규약이 시행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편의점 본사들은 우선 신규 출점을 제한하기로 했다. 지역별로 50~100m 안에서는 새 점포를 내지 않기로 한 것이다. 가맹점주들의 경영난에 숨통을 다소 틔워줄 것으로 기대된다. 또 직전 3개월간 적자를 본 가맹점주에게는 심야시간(자정~새벽 6시) 영업을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가맹점주에게 책임이 없는 사유로 경영 사정이 악화돼 ‘희망 폐업’을 원할 경우 위약금도 감면해주기로 했다.
이번 자율규약은 정부 규제가 아니라 업계 스스로 본사와 가맹점의 상생발전을 도모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만큼 본사가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 자율규약의 정신을 살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공정위는 자율규약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점검하고 상생협약 평가에 반영하기로 했다. 자율규약이 안착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자율규약에 가맹점 최저수익보장제 도입과 명절 영업 단축 등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 한계로 지적된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이 첫술에 배부르기는 어렵다. 본사와 가맹점, 공정위가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미진한 부분을 계속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또 자율규약이 다른 프랜차이즈업계로 확산돼, 공급 과잉과 온라인 거래 증가 등 구조적 요인으로 한계에 봉착한 자영업을 연착륙시키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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