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년부터 적용될 한국의 방위비분담금을 현재의 1.5~2배로 올리길 바라고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이 보도했다. 올 한해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을 위해 부담한 방위비분담금은 9602억원이다. 보도 내용대로라면, 한국에 한해 방위비분담금을 1조4400억~1조9200억원 수준으로 올리라고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터무니없이 지나친 요구다.
한-미는 2014년 1월 제9차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전년보다 5.8% 증액된 금액에 합의했다. 그런데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5년 만에 갑작스레 50~100%나 늘려야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용산기지의 평택 이전이 계획대로 2020년 완료되면, 추가적인 군사 건설비용 소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또 올해 들어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 크게 감소하면서, 주한미군이 긴급 상황을 상정한 군사 운용을 할 가능성도 줄어들고 있다. 주둔 비용이 늘어나기보다 줄어들 요인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정부는 미국을 상대로 이런 점을 적극 설명해, 합리적인 수준에서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한국이 지금까지 부담해온 방위비분담금도 사실 적은 게 아니다. 미국은 한국의 분담금이 주한미군 주둔 비용의 50% 남짓 된다고 평가하지만, 국내 시민단체들은 한국이 방위비분담금 이외에 토지와 시설, 각종 수수료 감면과 세제 혜택을 추가로 제공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65% 이상을 부담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본의 주일미군 지원과 비교해도 결코 적지 않은 액수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5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한국의 분담금은 일본보다 총액에서는 적지만, 미군 1인당 지원액이나 국내총생산(GDP) 대비 지원액으로 보면 1.5~2.6배나 더 많다. 연초부터 진행중인 10차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미국 협상팀은 자국 대통령이 직접 대폭 증액을 지시했기 때문인지 다소 경직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대북 억제만을 위한 군사력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한-미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해 더는 ‘붙박이군’도 아니다. 주한미군은 동북아 지역 안정과 중국 견제 등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도 크게 기여한다.
대북 억제력의 많은 부분을 미군에 의존한다는 걸 지렛대로 한국에 과도한 증액을 요구하는 건, 한-미 동맹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훈련 중인 미군. 전투기가 항공모함을 이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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