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남기 경제부총리, 문 대통령, 유은혜 사회부총리. 청와대사진기자단
정부가 17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열어 ‘2019년 경제정책 방향’을 확정·발표했다.
정부는 규제 완화를 통한 민간 투자 확대와 적극적인 재정 집행으로 일자리를 늘려 경제 사정 악화에 대응한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내년에도 대내외 여건이 개선되기 힘들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자동차와 조선 등 주력 산업 부진과 내수 침체 등 구조적 문제들이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운데다, 세계 경제의 성장세마저 둔화돼 수출 환경도 나빠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내년 경제성장률을 올해와 비슷한 2.6~2.7%로 전망했다. 일자리 창출(취업자 수 증가) 목표는 올해 목표인 32만명(1~11월 실적은 10만3천명)의 절반 수준인 15만명으로 낮췄다.
정부는 민간기업 투자 활성화를 내년 경제정책 방향의 1순위로 올렸다. 내년 상반기에 민간투자법을 개정해 모든 공공시설물에 민간 참여를 허용하기로 한 것이나, 현대자동차의 105층 신사옥 글로벌비즈니스센터(3조7천억원)와 에스케이하이닉스의 수도권 반도체클러스터(1조6천억원) 등 민간기업의 대규모 프로젝트가 조속히 진행되도록 행정 규제를 풀어주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 정부 예산 중 일자리 예산과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내년 상반기에 각각 65%와 59.8% 조기 집행하기로 한 것도 일자리를 늘려 우리 경제의 활력을 제고하겠다는 구상의 일환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도 계속 이어가기로 했다. 근로장려금(EITC) 확대와 기초연금 인상 등을 통해 취약계층 지원을 강화하고, 2020년으로 계획했던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을 내년으로 앞당기는 등 사회안전망도 확충하기로 했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시간제의 부작용을 보완하기 위해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개편하고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확대하기로 했다. 정책 시행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를 보완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두 제도 모두 근본 취지를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여전히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300만명을 넘고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에 허덕이고 있는 게 현실이란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점은 정부의 공정경제 추진 의지가 후퇴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통해 ‘사람 중심의 경제 패러다임’을 정착시키겠다”고 밝혔다. 정책 기조의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추진 과제가 보이지 않는다. 내년 상반기 중 반드시 성과가 나도록 중점적으로 추진할 ‘16대 과제’에 공정경제 관련 내용이 빠진 것이 단적인 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내놓은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이나 ‘2018년 경제정책 방향’에서 공정경제 추진 의지를 강하게 밝혔던 것과 대비된다. 올해 공정거래법과 상법 등 경제민주화 법안들의 국회 처리가 줄줄이 무산된 상황을 고려하면 오히려 내년엔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어야 마땅하다.
일부에선 공정경제에 ‘이념의 프레임’을 덧씌워 발목을 잡으려 하는데, 옳지 않다. 공정경제야말로 오랜 세월 이어져온 ‘재벌 중심 경제’ 탓에 저성장과 양극화의 늪에 빠진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다. 대기업의 독식 구조를 깨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정당한 보상을 받아야 산업 생태계의 토양이 풍성해지고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난다. 국내 전체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이고 전체 고용 인원의 88%가 중소기업에서 일한다. 투자 활성화도 시장경제 질서를 바로잡는 공정경제의 바탕 위에서 추진돼야 성과를 낼 수 있다. ‘함께 잘 사는 포용국가’로 가려면 성장의 과실이 고루 나눠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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