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북 실무협상을 이끄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1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인천공항/연합뉴스
방한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19일 민간 차원의 인도적 대북 지원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미국 국민의 북한 여행 금지 조처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새해부터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허용할 뜻을 내비친 것이어서, 교착상태가 장기화하고 있는 북-미 비핵화 협상에 물꼬가 트일지 주목된다.
그동안 북-미 협상이 풀리지 않은 것은 미국이 ‘비핵화 후 제재 해제’라는 원칙을 붙들고 완고한 태도를 취한 데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하고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기에 들어갔으며, 상응 조처가 있을 경우 영변 핵시설도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은 한-미 연합훈련을 유예한 것 말고는 이렇다 할 ‘신뢰 조처’를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몇달 동안 대북 제재를 강화하고 인권 문제로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비건 대표가 한국 도착 직후 ‘인도적 지원 재개’ 의향을 밝힌 것은 이런 대북 기조에 변화를 시사하면서 북한에 적극적인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북한을 향해 우호적인 손짓을 한 이상, 이젠 북한 쪽에서 응답이 나올 차례다. 물론 ‘인도적 지원 허용’은 북한이 그동안 요구해온 실질적인 제재 완화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은 성의를 표시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북한의 입장에선 미국이 지나치게 인색하게 행동한다고 여겨질 수 있다. 그렇더라도 미국이 기존의 제재 압박 일변도에서 벗어나 변화의 신호를 보낸 것 자체는 긍정적이다. 북한은 몇달째 미국의 대화 제의에 응하지 않고 있는데, 일단 미국과 만나서 상대의 의사를 확인하고 요구할 것은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협상 교착이 길어지는 것은 북한에도 결코 유리하지 않다.
정부도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 미국이 내놓은 ‘인도적 지원 재검토’만으로는 북한 태도를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은 다수의 한반도 전문가들도 동의하는 바다. 따라서 비건 대표 방한기간 중에 북한의 적극적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좀 더 구체적인 방안이 나올 수 있도록 한-미 간에 긴밀한 협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 남북협력사업을 비롯해 미국의 부담이 적은 분야에서부터 추가적인 양보 신호가 나온다면, 북-미 협상 재개에 한층 탄력이 붙을 것이다. 중재자로서 우리 정부의 노력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