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8월24일 정부세종청사에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안을 설명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20일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초 최우선 과제는 올해 추진한 경제민주화 법안 등의 입법 성과를 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최근 경제 사정이 나빠지자 정부가 경기 활성화에 무게를 두면서 경제 개혁은 후퇴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정부는 17일 발표한 ‘내년 경제정책 방향’에서 고용 부진과 성장률 둔화 등 실물경제 악화 원인이 투자 위축에 있다고 보고 민간기업 투자 활성화 대책을 ‘1순위 과제’로 올렸다. 경제 상황 변화에 대응한 긴급 처방은 필요한 일이다. 또 민간기업의 투자를 어렵게 만드는 규제를 옥석을 가려 풀어주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일도 아니다.
하지만 경기 활성화를 이유로 경제 개혁을 뒷전으로 미루는 일는 없어야 한다. 실제로 내년 경제정책 방향에서 제시된 ‘상반기 중점 추진 16대 과제’에 경제민주화 관련 과제는 보이지 않는다. 정부의 정책 기조가 바뀐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올해 공정거래법과 상법 개정안 등의 국회 처리가 무산된 점을 고려하면 경제민주화법 입법 추진을 내년 중점 과제에 포함시키는 게 마땅했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불공정 하도급거래와 가맹분야 부당행위 등 갑을관계 개선에선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재벌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이나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담은 상법 개정, 금융회사 건전성 감독을 강화하는 금융그룹통합감독법 제정 등은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반대에 가로막혔다고 하나, 소극적인 자세를 보인 정부 여당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경제민주화를 통해 불공정한 시장질서를 바로잡는 일은 경제 활력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경제민주화 추진과 경제 활력 제고는 결코 상충되지 않는다. 모든 경제주체가 일한 만큼 정당한 보상을 받는 환경이 조성돼야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통해 ‘사람 중심의 경제 패러다임’을 정착시키겠다”고 강조한다. 백마디 말보다 한번의 실천이 중요하다. 가시적 결과물을 내놔야 국민의 믿음을 얻을 수 있다.
내년 초에 경제민주화법 입법을 추진하면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이 “경제도 어려운데 기업 때리기를 한다”며 또 발목을 잡을 게 불을 보듯 훤하다. 정부 여당이 흔들리지 말고 경제민주화법 입법을 이뤄내야 할 것이다.
▶ 관련 기사 : 김상조 위원장 “소득주도성장 후퇴? 더 강화됐다”
▶ 관련 기사 : 올해도 물 건너간 경제민주화법…한국당·민주당 공동책임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