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사무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한 뒤 회견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적자국채 관련 폭로’가 혼탁스러운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신 전 사무관이 3일 유서를 남기고 잠적했다가 4시간 만에 경찰에 발견되는가 하면, 자유한국당과 보수 언론은 “재정 조작 정권” “국정 농단” 운운하며 무분별한 의혹 부풀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폭로 내용의 사실관계를 따져보면 이 문제가 이렇게까지 논란이 될 사안인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신 전 사무관의 폭로에는 사실과 추측이 혼재돼 있다.
첫째, 신 전 사무관은 2017년 11월 대규모 초과 세수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의 국가채무 비율을 높이려고 청와대가 기재부에 적자국채 추가 발행 압력을 넣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15조원 규모의 초과 세수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바이백(국채 매입)이 일시적으로 취소되고 적자국채 추가 발행 논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4조원 규모의 적자국채를 추가 발행했어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8.3%에서 38.5%로 0.2%포인트 높아진다. 의미 있는 수치로 보기 어렵다. 또 2017년 국가채무 비율은 그해 3월 탄핵당한 박근혜 정부가 아니라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국가채무 비율로 보는 게 상식적이다. 청와대가 무리를 하면서까지 국가채무 비율을 높이려 했다고 보기 어렵다.
둘째, 당시 청와대가 적자국채 추가 발행 의견을 냈고 기재부 실무진은 부정적이었던 것은 맞다. 하지만 국정 운영의 최종 책임을 지는 청와대가 중요한 정책 결정과 관련해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분명한 근거 없이 외압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지나치다. 결국 기재부 의견대로 적자국채 추가 발행을 하지 않은 것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셋째, 신 전 사무관은 초과 세수 상황에서 이자 비용이 들어가는 적자국채 발행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초과 세수가 발생했다고 반드시 국채를 갚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채 상환은 하나의 선택지일 뿐이다. 예를 들어 빚을 지고 있는 가계가 현금이 생겼다고 무조건 빚을 갚는 것은 아니다. 꼭 필요한 지출을 하거나 투자를 할 수도 있다. 국채 발행 여부는 경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된다. 당시 ‘100대 국정과제’ 추진을 위한 재원 마련은 문재인 정부에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신 전 사무관이 국채 발행 업무를 맡고 있는 실무자의 입장에서 당시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지난 1일 유튜브에서 “2017년 업무를 처음 담당했을 때부터 적자성 국채 발행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것이 내 역할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체 정책결정 과정 중 일부분만을 경험한 것을 근거로 일방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로 보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사안을 무조건 키우면서 정치 쟁점화하는 자유한국당과 보수 언론의 행태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3일 “80년대 민주화운동 이후 최대 양심선언”이라고 했고, 나경원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나라 살림을 조작하려 했다”며 ‘워터게이트 사건’에 비유했다. 자유한국당은 ‘나라살림조작 사건 진상조사단’도 만들었다. <조선일보>는 “전 정권 먹칠용으로 적자국채를 발행하려 했다면 국정 농단이 따로 없다”고 주장했다. 사실관계에 관한 정확한 검증이 없는 무책임한 비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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