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계기 사건’ 한-일 누리꾼 공방 우려
징용배상 국제분쟁화는 책임 회피용
아베, 국내 정치에 외교 이용 말아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4일 미에현 이세신궁에서 연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세/교도 연합뉴스
일본 초계기 접근 사건과 일제 징용 배상 문제로 한-일 외교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 국방부가 ‘초계기 문제’ 해명 동영상을 띄운 데 대해 일본 해상자위대가 반박 성명을 내면서 갈등이 한-일 누리꾼 공방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배상 압류 신청에 반발하며 이 문제를 국제 법정으로 가져갈 움직임을 보인다. 한-일 관계의 미래를 생각하면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볼 수 없다.
일본 초계기 사건의 정확한 사실관계는 아직 충분히 규명됐다고 보기 어렵다. 일본은 한국 구축함이 북한 조난 선박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일본 해상 초계기를 향해 ‘사격통제 레이더’를 사용했다며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 정부는 당시 해당 레이더를 운용하지 않았고 오히려 일본 초계기가 저공 위협 비행을 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경위가 어떻든 사건이 이렇게 커진 데는 일본 쪽이 초기에 과도하게 문제삼은 탓이 크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그런 점에서 한국 정부가 상황을 해명하는 동영상을 올리며 대응한 것은 정당한 면이 있다. 하지만 이런 ‘진실 공방’이 한-일 누리꾼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댓글 싸움’으로까지 번지는 것은 옳은 방향이라고 볼 수 없다. 한-일 정부는 사실관계를 차분히 규명하는 쪽으로 협의를 해나가야 한다.
일제 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 신일철주금의 자산 압류를 신청한 것과 관련해 일본 정부가 강하게 반발하며 국제분쟁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6일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압류 신청에 대해 ‘매우 유감’이라며 ‘국제법에 근거해 대응하기 위한 조처 검토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징용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에 대해서도 강제집행 절차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서 한-일 외교 갈등은 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최종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아베 총리는 이날도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그러나 청구권협정과는 상관없이 개인배상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는 것은 1991년 당시 일본 외무성 조약국장의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일본 정부가 이런 진실을 인정하지 않고 배상 문제를 국제 여론전으로 끌고 가 희석하려는 것은 올바른 태도라고 보기 어렵다. 특히 일본 정부는 아베 총리가 외교 사안을 의도적으로 쟁점화해 국내 보수층의 지지를 끌어올리려 한다는 비판이 있다는 점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초계기 갈등이나 배상 문제는 순리에 따라 차분히 풀어야 한다. 이런 외교 사안이 한-일 관계를 훼손하는 방식으로 증폭되는 것은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이런 불일치가 한-일 관계의 기본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 양국이 감정을 자제하고 이성적으로 논의해 갈등 사안을 원만히 해결하는 데 슬기를 발휘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