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올해 적용할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으로 10억달러(1조1335억원)를 내라고 최종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분담금 유효기간도 기존 5년에서 1년으로 줄이는 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지난해 낸 방위비분담금 9602억원과 비교하면 대폭 늘어난 것으로, 전례 없는 과도한 증액 요구다.
방위비분담금은 1991년 도입 이래 매년 한자릿수 수준에서 점진적으로 늘어났다. 한-미는 5년 전인 2014년 9차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도 전년보다 5.8% 증액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후 분담금은 매년 소비자물가지수에 연동하되 증액은 4% 이내로 제한됐다. 갑작스럽게 대폭 증액된 액수를 요구하는 건 이제까지의 관례에서 크게 벗어난다. 이에 한국 정부는 ‘분담금 1조원 이상’도 검토하는 대신 협정 유효기간을 3년으로 ‘역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들어 주한미군의 주둔비가 크게 증가할 사유가 딱히 눈에 띄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이 터무니없는 증액을 요구하는 건 동맹의 신뢰를 해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미는 지난해 10차례나 방위비분담금 협상을 진행했지만 타결에 실패했다. 한-미 협상팀이 이견을 좁히는 와중이었는데 막판에 미국 쪽이 돌연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섰다고 한다. 평소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주장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개입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해 12월 청와대를 방문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만나 증액을 압박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강경화 장관이 직접 국회를 찾아 설명회를 연 데서 정부의 곤혹스러운 처지가 엿보인다.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에 기여하는 몫은 실제 겉으로 드러난 수치보다 많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해 5월 “미국은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비용의 42%를 부담한다’고 밝히지만, 한국이 무상 제공하는 서울 용산 노른자위 땅의 임대료 등을 포함하면 한국의 실제 부담은 80%까지 올라간다”고 보도한 바 있다.
정부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합의점을 찾을 수 있도록 트럼프 행정부를 적극 설득해야 한다. 미국의 지나친 요구를 받아들이는 게 ‘어쩔 수 없는 일’이 돼선 안 된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 역시 동맹의 의미와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생각한다면, 과도한 요구로 한-미 관계를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지난해 6월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 제4차 회의에서 한국의 장원삼 대사와 미국의 티모시 베츠 대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울/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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