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가 공구상 철거를 반대하며 을지로 일대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서울시가 23일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정비사업을 전면 재검토해 연말까지 종합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그 첫번째 조처로 ‘생활유산’으로 지정된 을지면옥 등 세운3구역 노포(오래된 가게) 4곳의 철거를 막고 보존 대책을 마련한다. 그러나 철공소와 공구 가게들이 밀집한 3-1·4·5구역의 정비사업은 지속하기로 했다. 정작 생존 위기에 몰린 이들에 대한 대책은 빠진 셈이다.
3-1·4·5구역은 지난해 10월 관리처분인가가 나서 철거가 진행중인 상태라고 한다. 서울시로서도 사업을 중단시키는 데 큰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전례가 없지 않다. 서울시는 2011년 옥인1구역 관리처분인가 신청을 반려한 뒤,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지난해 3월 재개발정비구역 지정 자체를 직권 해제했다. 재개발조합이 행정소송을 내자, 시는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을 잘 조정해 소 취하와 함께 ‘역사문화마을’ 사업에 대한 합의를 끌어냈다.
이런 경험이 있는 서울시가 재개발이나 다름없는 사업을 승인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시는 “2014년 계획 수립 당시 산업생태계와 도시 조직이 없어지는 문제를 고려하는 사회 분위기가 없었다”는 취지로 해명하고 있다. 이번 관리처분인가가 지난해 10월에야 나왔고, 같은 사업지구에 속하는 세운상가에 대해 2016년 재생과 보존 위주의 정비 계획을 세운 것을 보면 앞뒤가 안 맞는 얘기다.
처음부터 모든 사업지구에 ‘도시재생’의 취지를 제대로 반영했더라면 일이 이렇게 복잡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시는 재개발 관성과 보여주기식 행정, 조급증 등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 아닌지 되돌아보기 바란다. 도시재생은 ‘속도’와 양립하기 어렵다. 쇠락해가는 지역의 역사성을 보존하면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려면 오랜 검토와 차분한 사업 진행이 필수적이다. 지역 구성원들의 참여와 소통도 철저히 보장해야 한다.
아직 관리처분인가가 나지 않은 수표구역의 사업을 종합 대책이 나올 때까지 중단하기로 한 건 잘한 결정이다. 세운3구역 토지주 가운데 일부는 ‘시행사에 속았다’며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위법한 요소가 없었는지 철저히 살피기 바란다. 무엇보다 생존의 위기에 빠진 상인들을 도울 방법을 찾는 일이 시급하다. 유명 노포 보존보다 중요한 건, 영세 상공인들의 생존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