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8일 도쿄 국회 정기국회 개회 때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8일 시정연설에서 한-일 관계에 대해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한-일 갈등이 일제강점기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에서 최근엔 일본 초계기의 저공 위협비행 등 군사 분야로까지 확대되는 엄중한 현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것이다. 두 나라 관계를 개선하기보다 현재의 불화와 대립을 그냥 방치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의 무책임한 태도에 깊은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베 총리가 시정연설에서 한국을 언급한 것은, 북한 문제를 설명하면서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도 긴밀히 연대해 나가겠다”는 대목뿐이다. 이는 다른 주변국들에 대해선 적극적인 정책 의지를 밝힌 것과 크게 비교된다. 아베 총리는 북한에 대해 “상호 불신의 껍데기를 깨고,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과 직접 마주 보며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며 국교정상화 의지를 밝혔고, 중국에 대해서도 “중-일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리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아베 총리가 2012년 2차 집권 이후 한-일 관계를 해마다 격하해온 게 사실이지만, 이번처럼 의례적인 관계개선 의지 표명조차 하지 않은 건 지나치게 의도적이며 정치적이다. 상대방을 무시하는 식으로 분풀이를 하겠다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발상으로 읽힌다. 최근 한-일 충돌이 격화하면서 아베 내각 지지도가 올랐다는 여론조사에 고무된 측면이 있다는 일본 언론 보도도 나온다. 그러나 그동안 한-일 관계의 경험에 비춰 보면, 두 나라의 불화가 장기화하는 건 양국 모두에 손해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아베 총리가 문제 해결에 나서기보다, 국내 정치적 이득을 위해 오히려 즐기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건 책임있는 국가 지도자의 자세라 하기 어렵다.
해묵은 한-일 갈등의 불씨가 군사 분야로까지 옮겨붙은 책임은 일본에 있다. 일본은 지난 연말 돌연 “동해상에서 한국 해군의 구축함이 사격통제레이더로 자국의 해상 초계기를 조준하는 위협적인 행동을 했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며 분란을 일으켰다. 그 이후로도 세차례나 일본 해상 초계기가 저공 근접비행을 계속해 군사적 긴장을 높였다. 그런데도 새해 시정연설에서 이에 대한 아무런 언급 없이 모른 척 외면만 하니 앞으로 한-일 관계를 어떻게 해나가자는 건지 아베 총리에게 엄중히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