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31일(현지시각)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의 스탠퍼드대에서 대북 정책에 관해 연설하고 있다. 국무부 웹캐스트 화면 갈무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1일(현지시각) 2차 북-미 정상회담 장소와 날짜를 다음주 초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전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한번 더 날짜와 장소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2차 정상회담 개최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사실상 사라졌다. 이에 따라 이르면 4일부터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특별대표와 북한 쪽 카운터파트가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중요한 것은 ‘북-미 실무협상이 어떤 의제로 얼마나 심도 있게 이루어지느냐’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비건 대표의 31일 강연 내용은 주목을 요한다. 비건 대표는 영변 핵시설 폐기가 실무협상의 주요 의제임을 시사했다. 영변 핵시설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부터 ‘조건부’ 폐기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비건 대표가 ‘상응조처’를 함께 논의하겠다고 밝힌 것은 협상 전망을 밝게 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비건 대표의 발언 중에 더 눈길을 끄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전쟁을 끝낼 준비가 돼 있다”며 ‘종전 논의’ 가능성을 언급한 대목이다. 종전선언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관심사에서 다소 멀어졌지만 여전히 북-미 협상에서 중요한 안건이고, 종전선언이 이뤄질 경우 북한 체제 안전보장에 전환점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비건 대표의 발언만 놓고 보면 곧바로 종전선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는 불분명한 만큼, 실무협상에서 실질적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비건 대표가 “포괄적인 신고를 통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전체 범위에 대해 완전히 파악해야 한다”고 한 것도 주의 깊게 들여다볼 대목이다. 이제까지 미국은 ‘선 핵신고’를 주장해 북한의 반발을 샀는데, 이번에는 ‘비핵화 과정이 최종적으로 되기 전에’라고 시기를 뒤로 미뤄 협상의 여지를 남겼다. 타협 가능한 방안을 들고나온 것이어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다만 비건 대표가 ‘비핵화가 완료되기 전에는 ‘대북 제재’ 해제는 없을 것’이라고 밝힌 대목은 북한의 요구와 상충하는 것이어서 진통이 예상된다. 이 문제에서 미국이 완고하게 원칙만 고집하다간 협상이 어려움에 봉착할 수도 있다. ‘제재 유지’ 기조를 지키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우회로를 확보해 숨통을 틔워주는 것이 비핵화 촉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