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도지사(가운데)가 지난 5일 제주도청에서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의 ‘조건부 개설 허가’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국내 첫 영리병원 허가를 받은 녹지그룹이 지난 14일 제주도를 상대로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을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제주도가 도민들의 압도적인 ‘허가 반대’ 공론화 결과마저 뒤집으며 중국 자본에 무리한 특혜를 주고도 오히려 뺨을 맞은 꼴이니 참사를 자초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더구나 소송은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보건의료단체들은 내국인 진료를 제한할 법률적 근거가 없으니 조건부로도 허가를 내주면 안 된다고 지적해왔다. 녹지그룹도 허가 직후 기다렸다는 듯이 소송을 예고했다. 이제 와서 “의료 공공성 확보를 위해” 총력 대응하겠다는 제주도의 말이 궤변으로 들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소송만 대응해서는 사태가 훨씬 크고 복잡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률적인 방어막이 취약한 소송을 낙관하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라고 할 수 없다. 소송에서 지면 녹지국제병원의 내국인 진료의 길이 열릴 뿐 아니라, 다른 영리병원의 허가를 제한하는 빗장마저 무력화될 우려도 크다. 최악의 사태까지 고려해야 한다.
애초 녹지국제병원 허가는 광역 지자체 한 곳의 행정행위로 끝나는 사안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자본의 거센 공격에 시달려온 의료 공공성의 기반을 흔들 수 있는 상징성이 큰 행위였다. 그런데도 제주도는 외국에서 경제적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검증된 ‘의료 관광’에 집착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
의료법에 따른 개설 시한이 새달 4일로 다가왔지만, 녹지병원은 의료인력도 전혀 갖추지 않았다고 한다. 병원 운영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녹지그룹이 153만여㎡의 제주헬스타운 사업을 추진하면서 제주도의 권유로 사업 부지 안에 병원 건물을 지었다가, 외국인 진료만으로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보고 제주도에 병원 인수를 요구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원희룡 제주지사에게 있다. 원 지사는 제주도민과 국민에게 사과하고, 여러 의혹에 대해서도 해명해야 한다. 지난해 1월 ‘내국인 진료 제한’에 법률적 문제가 없다고 유권해석을 한 보건복지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제주도와 복지부는 최악의 사태를 막는 방법은 ‘허가 취소’라는 보건의료단체 등의 지적을 귀담아듣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