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북한 비핵화 조처를 견인하기 위한 상응조처로 한국의 역할을 활용해 달라’는 뜻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철도·도로 연결부터 남북경제협력 사업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다면 그 역할을 떠맡을 각오가 돼 있다”며 “그것이 미국의 부담을 덜어주는 길”이라고 말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제재 완화’가 핵심 쟁점의 하나로 떠오른 가운데, 문 대통령이 내놓은 ‘남북경협 활용론’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문 대통령의 발언에서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미국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구절이다. 미국은 하노이 2차 정상회담에서 북한으로부터 ‘영변 핵시설 폐기’를 포함해 최대한 많은 비핵화 조처를 끌어내려 하고 있다. 이에 대한 상응조처로는 연락사무소 개설과 종전선언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은 ‘제재 완화’를 상응조처의 필수 품목으로 요구하고 있다. 얼마 전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제재 완화의 대가로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이 우리의 의도’라고 운을 뗐지만, 미국 내부의 부정적 여론 때문에 ‘제재 완화’ 카드를 마음 놓고 쓰기 어려운 상황이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바로 이 지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곧바로 ‘제재 완화’를 하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에 부담이 될 수 있으니, 남북경협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상응조처 문제를 해결하자는 제안으로 해석될 만하다. 이렇게 하면 제재 완화 틀을 유지하면서 ‘면제 조처’를 통해 북한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다. 북한으로서도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재개를 포함한 남북경협 사업을 통해 상응조처를 받아내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
일부에선 문 대통령 발언을 놓고 ‘퍼주기’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문 대통령의 말은 ‘제재 완화’에 대한 미국 내부의 반발에 따른 부담을 남북경협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덜어주겠다는 것이어서 ‘퍼주기 논란’과는 관련이 없다고 봐야 한다. 더구나 경협 사업이 남북 양쪽에 이득이 된다는 것은 그간의 경험으로 실증됐다고 할 수 있다.
이르면 21일부터 2차 북-미 정상회담 의제를 놓고 후속 실무회담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제시한 ‘남북경협을 활용한 우회적 제재완화 방안’이 북-미 사이 핵심 쟁점을 타결하고 ‘빅딜’의 돌파구를 열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