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철 북한 대미특별대표가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엿새 앞둔 21일 베트남 하노이의 한 호텔로 들어가고 있다. 김 대표는 스티브 비건 미국 대북특별대표를 만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노이/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21일 언론을 상대로 ‘콘퍼런스콜’(전화 브리핑)을 열어 이번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한 여러 쟁점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설명했다. 미 고위당국자는 이 자리에서 비핵화와 관련해 “매우 신속하고 큼직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북한의 행동을 촉구했다. 또 백악관은 따로 자료를 내어, 북한이 비핵화를 하면 대북 투자 유치 등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유인책을 내놓았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코앞에 다가오면서 북한을 상대로 압박과 회유의 양동작전에 나선 것으로 읽힌다.
이 당국자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최근 스탠퍼드대에서 ‘동시적·병행적 조처’를 언급한 데 대해 “비건 대표는 단계적 조처를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점진적 조처를 이 과정의 핵심 추동력으로 보지 않는다”고 설명했는데, 이는 단계적 해결보다 신속한 일괄타결을 원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또 이번 정상회담의 우선순위로 “모든 대량파괴무기(WMD) 및 미사일 프로그램의 동결” 등을 언급했다. ‘해체’나 ‘파괴’가 아닌 ‘동결’을 언급한 것을 놓고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백악관이 북한의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시설 해체 약속’을 상기시키며 “완전한 비핵화”를 재확인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춰보면 ‘동결’을 비핵화 조처의 입구로 삼겠다는 뜻이라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
미국 당국이 이렇게 언론 설명에 나선 것은 그만큼 이번 회담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상대가 있는 협상에서 의지만으로 될 일은 아니다. 미국이 북한 비핵화에 상응할 만한 조처를 내놓지 않는다면 ‘큼지막한 움직임’은 장담하기 어렵다. 백악관은 북한 비핵화를 전제로 “미국과 파트너들이 대북 투자 유치와 인프라 개선, 식량안보 증진과 그 이상의 방안을 탐색할 준비가 돼 있다”고 두루뭉술한 유인책을 제시했는데, 좀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대북제재 완화 방안을 유연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며칠 전 “남북 사이의 철도·도로 연결부터 남북 경제협력 사업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다면 그 역할을 떠맡을 각오가 돼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국내 정치상황 때문에 직접 움직이기 어렵다면 문 대통령의 제안을 활용하는 걸 적극 검토할 때다.